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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 1218
    2016.08.10 (17:05:53)
    도서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무슨 서류를 만들 때 직업란을 두고 나는 망설일 때가 더러 있다. 생계를 위해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직업이라고 한다면, 내가 생계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선뜻 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직' 이라고 써 넣기도 그렇고, 불교승단에 소속되어 있는 몸이라 하는 수 없이 편의상 '승려' 라고 쓰긴 하면서도 석연치 않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덕에 생계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직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막말로 해서, 부처님의 이름을 팔아서 그것으로 먹고 살아가는 수단을 삼는다면 그건 하나의 직업이 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승려가 과연 직업이 될 수 있을지 늘 갸우뚱거려진다.

       세상에는 별의 별 직업이 많다.

       즉, 의식주의 생계를 위해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병아리 감별사도 있고 피아노 조율사도 있다. 나무꾼도 있고 꽃을 가꾸는 사람도 있다. 미국정부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는 대략 2만3천 559 종류의 직업이 있다는데 그 중에는 희한한 직업도 많다. '매트리스 워커'라는 직업은 침대 매트리스의 부드러움을 검사하기 위해 날마다 여덟 시간씩 맨발로 침대 요를 밟고 다니는 일로 생계를 삼는다. 또 '수염 닦기'라는 직업은 지하철 같은 곳의 광고에 그려진 미인의 그림에 장난으로 그어 놓은 수염을 닦으며 돌아다니는 일이다.

       이것은 내가 직접 파리 지하철에서 겪기도 한 일인데, 출퇴근 시간의 혼잡 속에서 사람을 완력으로 전동차 안으로 밀어 넣는 이른바 '푸시맨'이다. 체력이 좋은 젊은 남녀들이 눈에 띄는 유니폼을 입고 웃으면서 사람들을 밀어 넣는 모습은 피차가 유쾌하게 여겨졌다.

       현대 사회가 고도로 분업화됨에 따라 직업 또한 더욱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다. 다 필요에 의해서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웃과 사회에 덕이 되는 것은 좋은 직업이고, 해독을 끼치는 것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그 일을 통해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마음껏 누릴 수있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생활의 한 방편으로 하고 있다면, 그의 삶은 날로 생기를 잃어갈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기 직업에 대해서 애착과 긍지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들은 일정한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애착과 긍지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돈 몇 푼에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팔려가는 일이 허다하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불행한 일이다.

       윤오영의 <방망이를 깎던 노인>이 생각난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한 노인이 있었다. 주문을 받고 나서 노인은 열심히 깎아 나갔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며 굼뜨기 시작, 마냥 늑장이다. 곁에서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된 것 같은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시외로 떠나는 차 시간에 초조해진 주문자는, 이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노인은 못 들은 척한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대로 달라고 했더니 노인은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그는 기가 막혔다. " 살 사람이 좋다는데 뭘 더 깎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방망이를 깎아 달라고 했던 그는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아 될 대로 되라는 심경에서 체념한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노인은 비록 길가에 앉아 방망이를 깎고 있을망정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과 긍지를 지니고 있었다. 노인이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면 대충대충 깎아 하나라도 더 만들어 팔면 되었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그렇게 함부로 내던져 버릴 수가 없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생활의 목적이고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꿋꿋한 장인 정신이다. 노인은 방망이를 깎는 일을 통해서 당신 스스로를 깎고 다듬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벌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 가면서 의연히 살았던 것이다.

       노인은 또 얼마 동안 일을 하고 나서 방망이를 들고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더니 그제야 다 됐다고 내주었다. 그는 값을 치르고 그 자리를 떠나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의 천성에 알맞는 직업을 천직(天職)이라고 한다. 인간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저마다 몫몫이 필요한 일이 주어져 있을 것 같다. 천직을 가진 사람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을 통해 '인간' 이 날로 성숙되어 가고 그 일에 통달한 달인이 되어간다. 천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과 긍지를 지니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꾸준히 지속하게 되면 그 일이 바로 천직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 읽고 감명을 받은 '마지막 손님' (다케모도 고노스케 지음)을 소개하고 싶다. 어떤 제과점에 4년째 근무하는 열아홉 살 게이코라는 아가씨의 이야기다. 제과점 이름은 춘추암(春秋庵).

       눈이 내리는 겨울밤 가게 문을 닫고 큰길로 나섰을 때 지붕 위에까지 쌓인 자동차 한 대가 어느 집을 찾는듯 멈칫멈칫 지나갔다. 게이코가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 그 차는 자기네 가게 앞에 정차했다. 게이코가 달려가 자동차 창에 노크를 하자 창문이 열렸다.

       차 안에서 한 남자가 말했다. 자기 어머니가 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는데 앞으로 하루 이틀이란 말을 오늘 아침 의사로부터 듣고, 어머니에게 뭐 잡숫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으니 "전에 오오쓰에 있는 춘추암의 과자를 먹었더니 무척 맛있더라. 한 번 더 그걸 먹고 싶구나." 하셨단다. 아들은 곧"제가 사울 테니 기다리세요." 하고 집을 나왔지만 때마침 눈이 내려 고속도로에 차들이 밀리는 바람에 이렇게 밤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가게의 문이 닫힌 후라 난감해 하던 참이다.

       이 말을 들은 게이코는 가게 문을 열고 환자가 먹을 만한 과자를 손수 골랐다. 손님이 값을 치르려 하자 게이코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과자는 대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하고 의아해 한 손님에게, "이 세상 마지막에 우리 가게의 과자를 잡숫고 싶다는 손님께 모처럼 저희들의 성의니까요.“

       "눈 오는 밤이니까 운전 조심하셔서 돌아가십시오." 문 밖에 나가 전송을 한 뒤 가게로 돌아온 게이코는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그날 매상에 추가시켰다. 코트를 사기 위해 저축해 온 그 돈에서.

    ‘조그만 가게임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 조그만 당신의 가게에
    사람 마음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자.‘

       이 말을 게이코는 자신이 근무하는 일터에서 손님을 대할 때마다 그대로 실천해 나갔다. 그 가게에 들른 손님들은 게이코의 이런 직업 정신에 하나같이 감동하여 그녀를 좋아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업은 그것이 한낱 생계를 위한 방편이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소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일을 통해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루고 자기 자신을 알차게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니 남을 위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내 일이고 내 삶의 몫이다.

    95. 4.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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