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순간에 사진·문서 날리기 십상, 봄맞이 대청소보다 급한 파일정리
헌 옷 정리하듯 헌 파일도 정리해야.. 귀찮다고 놔뒀다간 땅을 치고 후회
10년치 가족사진, 석달 공들인 졸업작품.. 내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설마가 현실이 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다. 혹시 몰라 마우스를 클릭 또 클릭해보지만 삭제된 파일을 찾을 수 없다. 순식간에 사라진 수천 장 사진이, 수백 곡 음원이, 수십 개 문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꿈이라면 깨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사라진 건 수많은 파일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추억, 땀과 노력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일러스트= 안병현
 

직장인 최연정(37)씨는 얼마 전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평소처럼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위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알림창이 뜨면서 아무 데이터도 읽히지 않았다. "순간 바탕 화면에 저장해둔 여행 사진과 문서 파일들이 머리를 스쳤어요. 따로 정리해야지 생각만 하고 미뤘는데 정말 허무하게 다 날아가 버렸죠." 노트북은 고쳤지만 따로 저장해두지 않은 최근 파일들은 몽땅 사라지고 말았다.

 

"랜섬웨어에 제가 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3개월간 작업했던 졸업 작품이 한순간에 백지장이 돼버렸죠." 대학원생 이형욱(28)씨는 지난해 랜섬웨어에 감염된 노트북을 눈물을 머금고 포맷해야 했다. 자주 사용하는 파일들이라 따로 저장하지 않고 둔 게 화근이었다. 랜섬웨어란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시스템을 잠그거나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인질로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 돈을 내더라도 파일이 복구된다는 보장이 없어 피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포맷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멘붕'의 순간을 겪게 된다. 기계 고장이나 개인 실수로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 영상, 문서, 음악 등이 송두리째 삭제되는 경우다. 운 좋게 복구가 된다 한들 처음 상태로 완전히 되돌릴 가능성은 작다. 컴퓨터뿐만 아니다. 매일 손에서 떼지 않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 friday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통해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저장 매체가 고장 나거나 프로그램 오류 등으로 포맷되거나 파일이 삭제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67.2%였다.

 

위기의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선 중요한 파일은 따로 저장하고 수시로 정리해야 한다. 문제는 정리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사진부터 동영상, 문서와 애플리케이션까지 방대한 디지털 파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더욱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쌓이는 파일이 늘수록 '디지털 대청소'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데스크톱에 저장된 수많은 디지털 파일도 때로는 대청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91.2%가 '그렇다'고 답했다. '디지털 파일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과 돈을 쓸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 67%가 '그렇다'고 답했다.

 

봄맞이 집 안 대청소가 한창이다. 집만 대청소 할 게 아니라 여기저기 쌓여 있는 디지털 파일도 먼지를 털어내고 꼼꼼히 정리정돈해야 할 때다.

 

그래픽= 김의균


헌 옷 버리듯 헌 파일도 버려야

 

"유럽 여행에서 가장 고대했던 순간이 파리 에펠탑 야경을 보는 거였어요. 오후 8시 정각에 조명이 켜지면 에펠탑이 반짝거리는데 그 멋진 장면을 보면서 전 사진 지우느라 바빴어요. 하필 그때 딱 스마트폰 용량이 차서…."

지난 유럽 여행을 회상하던 대학생 김봄(23)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행 가기 전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과 애플리케이션을 정리해야지 생각했지만 미뤄뒀던 게 화근이었다. "미리 정리해두지 않으면 필요할 때 스마트한 기계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실감했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외장하드에 사진을 옮기고 필요 없는 사진, 애플리케이션은 바로 지워요."

 

지워야지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미루기만 하다간 김씨처럼 필요한 순간 난감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디지털 대청소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은 또 있다. 서울 행당동에 사는 임수정(31)씨는 얼마 전 어린이집에 보낼 딸아이 사진을 찾다가 반나절을 꼬박 보냈다. "작년 봄 벚꽃 폈을 때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걸 찾느라 데스크톱에 있는 폴더란 폴더는 다 열어 사진 수천 장을 뒤졌어요. 날짜나 폴더명만 잘 표시했어도 금방 찾았을 텐데 시간 낭비 많이 했죠." 파일을 백업해두더라도 시간, 장소별로 정리하지 않으면 필요한 파일 찾기가 쉽지 않다.

 

정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자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크게 다르지 않다. 쓰지 않는 가구나 입지 않는 헌 옷을 버리듯 쓰지 않는 헌 파일은 버리고 치워야 한다.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면 체계적으로 정리정돈해 찾아 쓰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friday 설문 결과 디지털 대청소가 가장 필요한 건 사진(36.6%)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애플리케이션(23.9%), 동영상(15%), 프로그램(14.4%), 문서(10.1%) 순으로 답했다.

 

뚝딱 찍어 뒤죽박죽…기록 포화 시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왜 사람들은 파일들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걸까? '디지털 파일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응답자들은 '귀찮고 복잡하게 느껴져서'(36.4%), '지우는 게 아까워서'(22.5%), '나중에 언제든 꺼내 볼 거라서'(20.1%), '정리 방법을 잘 몰라서'(15.6%), '정리의 필요성을 잘 못 느껴서(5.4%)'라고 답했다.

 

경남 진해에서 나은(4)·도하(2)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 이현희(35)씨는 최근 스마트폰을 대용량으로 바꿨다. "매일 애들 사진을 찍는데 도저히 정리할 엄두가 나질 않아 스마트폰 용량을 늘렸어요. 128GB가 다 차면 그땐 어떡해야 하나 벌써 두렵네요." 사진 정리를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24시간이 모자라는 워킹맘에겐 사진을 선별하고 클라우드나 외장하드에 옮기는 일도 시간을 꽤 투자해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매일 스마트폰으로 찍는 아이 사진, 멋지게 차려입은 날 찍는 셀카, 맛집 찾아 찍는 인증샷까지 스마트폰엔 사진이 쌓여간다. 쉽게 찍고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의 장점이 '기록의 포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인천 송도에 사는 직장인 태철훈(34)씨는 "사진이 흔해져서인지 의미가 예전 같지 않다"며 "굳이 자주 꺼내 보지도 않으니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사진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에 깔린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부터 다운로드받은 음원 파일이 수두룩하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은 어떠한가. 업무상 문서 파일이며 자료 파일이 한가득이다. 미세 먼지 쌓이듯 눈 깜짝할 사이 쌓이는 디지털 파일은 용량을 키우며 기계를 압박해온다. 스마트한 기계를 스마트하게 쓰지 못하는 디지털 시대의 역설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집 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느끼는 불편과 달리 디지털 파일은 많이 쌓여도 당장 직접적인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며 "그러나 삭제하면 영원히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이 정리를 계속 망설이게 한다"고 했다.

 

매일 사진 찍고 새 파일 저장하기도 바쁘다. 이전 파일을 정리할 짬이 없다. 그러나 디지털 파일의 특성상 한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황도 벌어진다. "사람들은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며 불안함을 애써 회피하려고 해요. 주기적으로 중요한 것들은 두고 기존 것들을 지워나가는 습관을 만들어야 해요. 정리는 습관입니다."

 

미뤘다 후회 백 배, 바로바로 비우라

 

"미니멀리즘 열풍을 보면서 디지털 파일부터 버리고 비우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인 최대성(40)씨는 매일 출근 후 10분씩 메일함부터 스마트폰, 노트북에서 필요 없는 파일을 비워낸다. 꼭 저장해야 할 파일은 네이버클라우드에 날짜별로 저장한다. 지우기 애매한 파일은 임시파일함에 모아둔 뒤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도 필요 없으면 삭제한다. 텅 빈 메일함은 새 메일이나 중요 메일을 확인하기 쉽고 디지털 기기에선 사진이나 문서 찾기도 간단해졌다. "정작 중요한 파일은 일부더라고요. 비우고 버리니 업무나 생활이 훨씬 쾌적해집니다."

 

버리고 지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파일 관리의 핵심은 백업(backup·데이터 보존이나 사고에 대비해 미리 자료를 복사해두는 것)이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시간강사 김세진(36)씨의 컴퓨터엔 하드디스크가 5개다. 외장하드도 백업용까지 2개다. 강의용 사진 자료부터 논문까지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나눠 정리하기 위한 김씨만의 방법이다. "보고서 제출 2주 전에 파일이 전부 지워진 끔찍한 기억이 있어요. 그 뒤로는 나눠서 백업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파일 정리는 각 디스크별로 연도, 날짜별로, 다시 주제별, 파일 종류별로 재분류한다. 파일 정리는 저장 즉시 백업까지 해버린다. "누군가는 병적이라고도 하지만 저에겐 중요한 자료이다 보니 저만의 방식대로 정리하는 원칙을 만든 거죠."

 

전문가들도 백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데이터복구 전문업체 바른데이터의 안현규(30) 대표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외장하드 등의 데이터는 기술적으로 복원할 수 있지만 복원할 수 없는 데이터도 있다"며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외장하드나 USB 등을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HDD(hard disk drive), SSD(solid state drive) 등 저장장치는 점차 대용량화, 소형화, 저렴해지는 추세다. 외장하드가 아니라도 구글드라이브나 네이버클라우드 등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 따로 저장을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박재윤씨가 만든 포토북. 여행 다녀와서 중요한 이미지만 골라 만드는 포토북은 사진 정리·보관에 유용한 디지털 대청소법 중 하나다. / 박재윤
 

디지털 파일을 정리하는 아날로그적 방법도 있다. 서울 잠실본동에 사는 박재윤(32)씨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바로 포토북을 만든다. "외장하드에 사진을 모아놓긴 했는데 사진이 워낙 많다 보니 보고 싶을 때 테마별로 보기 힘들더라고요. 사진은 다시 보려고 찍는 건데 이렇게 하면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기도 좋아요." 서유럽 일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 추억을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삶의 활력도 살아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디지털 대청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흔들린 사진, 비슷한 사진부터 지워보자. 주기적으로 청소 기간을 정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주말 봄맞이 디지털 대청소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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