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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수 : 97
    2020.06.03 (10:10:34)
    도서명: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 
       설 잘 쇠셨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 속에서 또 한 해가 줄어들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면, 마침내 우리는 어디에서 마주치게 될까요? 하는 일 없이 일상에 묻혀 한 해 한 해 곶감 빼먹듯 세월을 빼먹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앙상한 꼬챙이만 남게 되겠지요.

       새해에는 무슨 원을 세우셨는지요.

       지난 해에는 고3짜리 아이 때문에 조마조마 가슴 졸이면서 불안한 나날을 거쳐 왔지만 이제는 그런 짐에서 벗어났으니 가슴을 활짝 열고 새해에는 새로운 원을 세울 만도 합니다.

       원은 삶의 목표이고 원동력입니다. 원이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에 부딪히더라도 그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생깁니다. 원이 없으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중심을 잃고 시류에 표류하게 됩니다.

       오늘부터라도 원을 한 가지 세우십시오. 어떤 원을 세울지 막연하다면 제가 대신 귀띔해 드릴까요. '살아 있는 부처'가 되겠노라고 한번 크게 원을 세워 보세요. '부처'를 너무 어마어마한 존재로만 생각지 마십시오. 부처란 곧 자비심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여러 경전에 부처님의 입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관무량수경>에는 "불심佛心이란 큰 자비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대자(大慈)란 모든 중생(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고, 대비(大悲)란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입니다. 슬플 비(悲) 자의 원뜻은 '신음하다'입니다. 내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함께 앓으면서 신음한다는 뜻입니다. 자식에게 기울이는 어머니의 마음이지요.

       어머니가 되어 보지 못한 우리 같은 처지에서는 지극히 관념적일 수밖에 없지만,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그 지극하고 간절한 희생정신은 실로 거룩한 사랑입니다. 아버지에게서는 그런 희생적인 사랑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생명의 뿌리이고 보금자리입니다. 따라서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에서 맺는 꽃과 열매도 제대로 열린다는 사랑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사랑인 어머니는 어디서 이루어진 것일까요. 한 사람의 여성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식을 통해서 어머니로 형성됩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이런 법문이 실려 있습니다.

       "보살은 중생으로 인해 자비심을 일으키고, 그 자비심으로 인해 보리심을 발하게 되며, 보리심으로 인해 깨달음을 이룬다."

       여기 보살을 어머니로, 중생을 자식으로 바꾸어 놓으면 어머니와 자식의 상관관계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지혜와 꽃과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중생이 없으면 보살은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식이 없으면 어머니는 사랑의 화신(化身)이 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흔히들, 무자식 상팔자니, 자식이 원수니 하고 푸념을 하지만 자식이 있어 상팔자가 되고 자식이 곧 선지식 노릇을 해주기 때문에 대지의 어머니로서 틀이 잡혀갑니다.

       부모 자식 사이건, 부부 사이건 모든 인간관계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이고 소재(素材)입니다. 그러니 엄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는 내 부름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홀히 대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부처가 되어 온 집안을 맑고 향기롭게 꽃피워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한 고을에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탁발을 하러 온 스님을 본 순간, 그 젊은이는 스님의 맑고 기품 있는 모습에 압도되어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가슴에 새겨 둡니다. 그날부터 그 젊은이는 어디에 가면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합니다.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그 스님을 만나게 되자, 젊은이는 크게 반기면서 속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스님, 어디 가면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젊은이의 당돌한 물음에 스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일러 주는 말을 깊이 명심하게, 저고리를 뒤집어 입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이를 만나거든 그분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인 줄 알게!"

       고지식한 젊은이는 스님이 일러준 말을 그대로 믿고, 어머니를 하직하고 그날부터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나기 위해 찾아 나섰습니다.

       먼저 스님들이 모여서 수도하는 깊은 산중의 절을 찾아가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저고리를 뒤집어 입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스님이 있는가 살폈지만 아무 절에서도 그런 분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 있는 부처는 깊은 산속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 속에 묻혀 있다는 말을 어떤 사람한테서 듣고서는 복잡한 거리와 장바닥을 헤매면서 찾아보았습니다. 다 해진 저고리를 누덕누덕 기워서 뒤집어 입은 사람은 어쩌다 한번 보았지만 신발까지 거꾸로 신은 사람은 끝내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혹시 그 스님이 잘못 일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꼬박 3년을 두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온 세상을 누비듯 찾아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계시 고향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3년 만에 정든 집 앞에 당도하니 젊은이는 목이 메었습니다.

       "어머니!" 하고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이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어머니는 날마다 기다렸지만 허사였습니다. 무사히 돌아올 날만을 가슴 졸이며 고대하던 어머니는 문밖에서 갑자기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너무 반가워서 엉겁결에 뒤집어 벗어 놓은 저고리를 그대로 걸치고 섬돌에 벗어 놓은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달려 나갔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야!"

       아들은 어머니를 보는 순간,

       "오메, 살아 있는 부처가 우리 집에 계셨네!"

       하고 어머니의 가슴에 안겼습니다.

       15세기 인도의 시인 까비르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물속의 물고기가 목말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웃는다 
    부처란 그대의 집 안에 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이걸 알지 못한 채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쉴 새 없이 헤매고 있네 
    여기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부처를 보라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보라 
    이 도시로 저 산속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은 여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으리. 


    <96 .3>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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