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타고르의 <기탄잘리>, 청록파 시인들(조두진, 박두진, 박목월)의 시집과 더불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나의 청소년기인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애송시집들이가. 이 시집들을 함께 읽으며 우정을 나누었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문득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하고 소리 내어 발음하면 내 마음에도 금방 푸른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고운별이 뜨며 맑은 시 한 편이 탄생하는 느낌이다.

   내가 여중 시절에 처음 접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모든 시들은 다 아름다웠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어 누나에게 편지를 부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으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고, <별 헤는 밤>을 읽고 나면 가을과 별이 더 좋아지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시>를 읽었을 때의 그 향기로운 여운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 시는 지금도 전 국민의 애송시라지만 나 역시 기도처럼 <서시>를 자주 외우며 살았고, 어쩌면 그 시의 영향으로 수도자의 삶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내가 암으로 힘든 투병을 하면서도 짬짬이 시를 쓸 수 있는 저력 역시 모태신앙의 영향은 물론 소녀 시절부터 애송했던 이 아름다운 시집 덕분이었음을 믿는다. 나는 그간 수많은 친지들에게 윤동주의 <서시>를 즐겨 낭송해 주고 편지 안에도 자주 적어 보냈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탈옥수 신창원 형제에게도 나의 책과 함께 보낸 편지에서 어떤 훈계의 말을 하기보다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었던 선한 마음이 분명 속 깊이 있었을 테니 그 마음을 다시 꺼내 보라고 권유했다. 앞으로의 날들이라도 꼭 ‘부끄럼 없는 마음’으로 살아 보라고 적어 보냈더니 그는 ‘사실 엄청난 잘못을 한 것에 비해 참회하기는커녕 별 죄의식도 없이 산 것 같다’, ‘깨우쳐줘서 고맙다’는 말로 답신을 보내왔고, 지금은 아예 나를 이모라고 부르며 종종 러브레터를 보내오곤 한다.

   <서시>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흔든 구절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을 반복해서 읽을수록 나는 시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막연히 시인이 되는 꿈을 꾸었으며, 감히 인류애에 불타는 마음으로 이웃 사랑에 헌신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사랑하되 하늘을 섬기는 마음으로 알아들었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는 겸손함으로 알아들었다.

   이 시를 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부족하나마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수도자가 되었다.

당신을 위한 나의 기도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 숨 쉬는 나의 매일이
읽을수록 맛 드는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때로는 아까운 말도
용기 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한 편의 시처럼 살게 하소서

1983년 내가 세 번째 시집인 <오늘은 내가 발달로 떠도>를 낼 저거엔 나도 윤동주 시인을 흉내 내어 시집 앞에 서시도 하나 넣었다. 첫 서원(1968) 후 15년. 종신 서원(1976) 후 7년차인 수도자로서의 어떤 결연한 다짐 같은 것을 나름대로 요약한 내용으로 볼 수 있겠다. 훗날 뜻밖에 이 구절을 좋아하는 분들도 더러 만나게 되어 기뻤고, 요즘도 종종 기도처럼 이 서시를 되뇌이곤 한다.

   1941년 24세의 나이로 불명의 서시를 썼으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해이기도 한 1945년, 일본의 한 형무소에서 슬프게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기도 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나의 보물 1호이다. 어린 시절 지녔던 초판본은 워낙 귀중한 것이라 어느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고, 지금은 정음사에서 나온 1972년판을 갖고 있는데, 그 하나라도 갖고 있으니 다행이다.

   정작 시인 본인은 출간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대학 졸업 기념으로 훗날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될 자필 시집을 미리 만들어 두었던 윤동주. 그리고 전쟁 중에도 윤동주가 남긴 원고들을 땅에 묻어가면서까지 소중이 보관했던 그의 친구와 가족들……. 그의 숨결이 담긴 원고가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지난 몇 년간 대학에서 시 강의를 할 때에도 나는 윤동주의 시집을 자주 소개하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처럼 학생들도 각자의 개성에 맞는 제목을 달고 자신의 서시도 넣어서 문집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곤 했는데, 시가 어려운지 대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산문적인 프롤로그 형태로 대신하곤 했다. 문집에 넣을 자작시가 없으면 다른 시인의 시라도 모아서 주제별로 만들어 두면 언젠가는 좋은 기념이 될 테니 우선 짧은 것부터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적에 애용하라며 숙제를 내준 일도 있다.

   나 역시도 요즘도 짧은 애송시 문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분위기에 따라 낭송하는 기쁨을 누린다. 예를 들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젊은이들에게는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하는 윤보영 시인의 시를, 사소한 것의 재발견을 강조할 저거엔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하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를, 가까운 이들과 화해하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겐 “백 년 살 것 아닌데 한 사람 따뜻하게 하기 어찌 이리 힘드오”라고 표현한 김초혜 시인의 <사랑초서>의 일절을 들려주면 다들 좋아한다.

   얼마 전 윤동주 시인을 위한 추모제에서 시를 한 편 낭송해 주면 좋겠다는 도쿄 가코게이 대학 측의 초대를 받고, 비록 참석은 못 했지만, 아래와 같이 추모시를 적어 보낸 일이 있다. 이 시를 적은 과정에서 연도는 다르지만 윤동주 시인과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날(2월 16일)이 똑같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당신은 외롭고 슬프게 떠났지만
시의 혼은 영원히 살아서
갈수록 더 밝고 고운 빛을 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던 당신은
종족과 이념을 뛰어넘어
서로 다른 이들을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별이 되셨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재촉하는
2월의 바람이 되셨습니다

모국에 남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단 한 권이 시집만으로도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끝없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시를 읽는 이들의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부활하는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스승이며
잊을 수 없는 애인입니다

고통의 어둠과 눈물 속에도
삶을 사랑하는 법을, 맑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희망의 별이 되어 주세요

당신을 닮은 선한 눈빛의
시인이 되는 꿈을 꾸는 우리에게
오늘은 하늘에 계신 당신이
손 흔들며 웃고 있네요

성자의 모습으로 기도하고 있네요

- 이혜인, <별이 된 시인 윤동주에게> 전문


글출처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해인 산문집,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