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값진 삶을 위해 또는 주어진 일상(日常)에서 부딪는 고비와 맞서 도전할 때면 평소 길들여 산 종교적 가르침이나 생활 철학으로 닦은 좌우명 더 나아가서는 누리에 빛을 남긴 위인들의 그림자는 등불과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우리는 두 해에 걸쳐 그만 정신적 지도자 두 어른을 잃었으니 이보다 더 큰 상심(喪心)과 외로움이 또 있었을까. 더욱이 종교까지도 초월한 두 성직자는 항상 외롭거나 어려움과 맞서 사는 이들에게는 하나가 되어 얼려 주고 깨우쳐 주는 사랑의 큰 스승이었다.

    ‘바보처럼 나누고 사랑하라’를 덕목으로 세사를 알뜰히 보살폈던 김추기경, 우리는 예서 시 한 구절을 만난다.
나는 눈물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낮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의 詩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모름지기 매양 그늘과 슬픔을 나란히 거느린 존경받아 온 큰 어르신이었다.

    ‘맑고 향기롭게’로 온 세상 방방곡곡 삶의 이랑에서 열매 맺도록 일깨운 법정 스님은 산허리에 기댄 오두막 선방(禪房)에서 입적하니 이 두 큰 스승은 실천궁행의 거룩한 참모습을 남기셨다.

    수녀 이해인 시인은 무성한 잎으로 우거져 그림자 넉넉히 드리운 나무와 그리고 눈보라에 높이 솟아 더욱 의연한 나무로 두 어른을 비유했다. 생각건대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뿌리를 다스리는 밑거름의 참삶이 전부였으니 이보다 성스럽고 향기로움이 있을까.

    죽음도 등에 업은 채 진리를 깨쳐 사는 큰 길만이 질서임을 강조했다. 이르되 기침이 잠을 깨우지 않았다면 고요한 한밤중에 진정한 자아(自我)와의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며 이것은 분명 자연만 베풀 수 있는 여백(餘白)이라고 갈무리할 적의 두 눈동자는 별빛이었다.

    자연으로부터 받는 것이 여백이라면 침묵은 사람이 쌓아 짓는 미덕이겠다. 마침 창 너머 저녁노을 따라 여기서도 시 한 구절을 가슴으로 만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간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짜여
지금은 가야 할 때
                 - 이형기의 詩 (落花)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이별(離別)이라고 한다. 이 시 역시 지는 꽃잎을 통해 이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한편 이 두 어른의 만남 또한 모든 것을 초월 창조적 삶을 보여 주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그 옛날 유불선(儒佛仙) 삼교의 화합의 전통은 세계사에도 드문 세계 속의 한국임을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길상사 앞마당 한쪽엔 성모 마리아와 관세음보살이 한몸으로 조각되어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영원의 미소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얀 눈길에 뚜벅뚜벅 외로운 발자국도 더러는 지난날을 무심 중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일상을 스승이라 했던가. 더욱이 깊은 지혜가 담긴 시(詩)는 그대로 감동이다. 한편 우리 조상들은 시를 직관적으로 만났다니 바로 다음 시구는 그런 면에서 음미할수록 은은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 은의 詩 (그 꽃) 중에서 
    삶이 비의(非義)가 들어 있기도 한 이 시는 ‘시가 없는 곳에 살고 싶다’로 대담을 마친 고 은 시인의 근작으로 그 감동은 읽은 이로 하여금 잠시마나 길을 헤아려 쉬었다가 가고픈 조용한 정자를 떠올리는 한 폭의 그림이라고나 할까.

글출처 : 월간 문학공간 2010년 10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