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 정기모


길을 걷다가
귓전에 머무는 푸른 연가와
가지런히 풀어내는 언어들은
내딛지 못하는 발끝에 머물고
구부린 등 뒤로 훅
바람 불어가는 동안
목 언저리 간지러운 이유 몰라
눈빛에 머무는 달빛만 건지는데
풋감처럼 떫은 삶일지라도
기억 저편에 꽃피웠던
풋사과 같은 화한 날들이 있어
멈추었던 걸음의 속도는 느리고
수줍게 피었다 지는
들꽃 앞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경계를 허물고 싶었네

 

성근 별들이 오롯이 남아
아직도 부를 것 같은데
흔들리는 풀들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어디로 흐르는 구름인지
내일 다시 성근 별을 보고 싶다고
간절한 눈빛으로 고하며
지나간 추억들을 어루만지며
몰래 글썽이는 눈물마저 따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