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면 / 정기모 고단한 뿌리가 기지개를 켜는 시간 바람이 마른 가지 끝 언어들을 품으면 좁다란 길목으로 반가운 걸음이 들겠지 손끝 비비며 기다림 긴 하루가 저물고 자욱한 안개 앞세운 느림이 토닥토닥 귓속이 간지러운 봄비 내리겠지 하마 남쪽 끝에는 홍매화 피었다는 따스운 소문이 봄꽃처럼 번지면 흰 새벽에 떠나는 첫 기차를 타고 싶다 검푸른 바다를 건너 산길로 접어드는 빛 고운 향기에 길이라도 잃어버리게 하여 죽은 듯 사나흘 몸살 앓고 나서 연분홍빛이거나 연둣빛이거나 봄비 얼룩이 가득한 편지를 받고 싶다 침묵보다 더 깊은 사연 담은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