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엔 / 정기모 시월이 돌아오면 자작나무 숲으로 가고 싶었다 발밑 바스락거림이 좋았고 언젠가 빛살 무늬로 가로 지르던 먼 날의 그리움이 아득해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숲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성거리다 보는 이 없는 그 길에서 저녁별 가득 비밀을 숨겨두고 싶었다 시월엔 언제나 국화꽃 가득한 우체국으로 빨간 엽서를 보내며 노란 은행잎 가득 하늘이 높다고 물빛 같은 그리움도 그렸다 서럽도록 시린 가슴으로 뭉게구름에 몸 실어 붉은 산허리 나직한 곳에서 화한 들국화 물 들인 그리움으로 이 가을 붉게 빛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