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오전 11시경이었다. 사무실에 나이 드신 민원인 두
분이 찾아오셨는데 한분은 77세 할아버지 한국인이시고,
또 한분은 같이 오신분의 4촌 동생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중국을 큰집 드나들 듯 자유롭게 왕래를 했던 194
6년경 13살 때 부모님들과 같이 중국으로 이사를 가서 살
다가 6.25전쟁이 나고 해서 한국에 오지 못하고 현재까지
그곳 중국에서 살고 있는 분이었다.

중국에서 오신분이 한국에 남아있는 호적의 생년월일과 중
국에서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생년월일 중 년도는 맞은데 월
일만 다르게 사용하여 와서 여권에도 한국 호적과 일치하지
않아 77세 되신 4촌 형과 확인을 하는 절차 등 두 분의
어르신을 상대로 약 2시간동안에 조사를 마쳤다.

조사를 마치고 나니 중국에서 오신 어르신께서 그동안 국
적회복 방법에 대하여 여러 차례 편지로 물어보았을 때 성
의 있게 답장을 해주었고 전화까지 해서 자세하게 알려 주
어서 너무 고마웠고, 오늘도 이렇게 친절하게 해주어서 고
맙다며 나한테 몇 차례 인사를 하셨고, 77세 드신 어르신은
자기 집이 면소재지 농협 뒤에서 자전차포를 하고 있으니
언제 그쪽에 나오면 꼭 들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그
렇게 친절하게 해드린 것 없이 평소에 하는 대로 행동했는
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면서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77세 드신 어르신께서 옛날이야기를 하시다가 요즘
세상에는 듣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장남이었고 남
동생 2명이 있었는데 그분이 22살때 군대 영장이 나오자 그
때당시 19살이던 바로 아래 동생이 장남인 형이 군대를 가
면 죽어서 돌아오지 못할지 모르고 장손이 자녀를 못 낳으
면 안 되니까 형이 군대에 가면 안 된다고 하고 형 대신 군
대에 입대를 했었단다. 그 동생은 1년 정도 근무를 하다
전쟁터에서 수류탄 파편을 맞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
지만 의가사 제대를 하였는데, 어느 날 동생의 영장(입영통
지서)이 나와 그때는 자신이 입대를 하여 6.25 전쟁이 있고
하여 5년 동안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 왔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나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형을 생각하는 동생
의 마음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어르신한테 “그 동생은 지금도 살아 계셔요?” 하고
여쭤봤더니 “죽고 없어. 그 동생 생각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나와”하고 말씀 하시기에 언제 세상을 떠나셨냐고 차마 물
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어르신 집안에 형제간의 우애가 그
렇게 좋은 것은 타고나신 천성 때문에 그러셨을 거예요.” 하
고 말하자 하시는 말씀이 77세인 노인이신데도 “시골 마을
에서 자녀들은 객지로 나가 버리고 할머니 혼자 사시거나 남
자분이어도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하여 벌초를 할 수 없는
집의 산소를 자진해서 벌초를 해드리면 참 좋아하고 나중에
그 집 자녀들도 선물을 가지고 찾아오고 그러데.” 라고 말씀
하시며 평소에 베푸시면서 생활하시는 것을 한마디 더 말씀
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 어르신과 이미 세상을 떠나신 그분의 동생은 언제나 마음
이 따뜻하시고 평생 덕을 베풀면서 생활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