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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축구] 하인스 워드 간증 -


 

미국의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월간 ‘ 가이드 포스트 ’ 6월호에

‘ 어머니와의 약속 ’이란 제목으로 기고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어머니의 존재와 신앙에 대해 감동적으로 수록했다.

 

* 다음은 그의 글 ‘ 어머니와의 약속 ’을 요약한 것입니다.

내가 자란 곳은 미국 조지아주.

그러나 내 고향은 어머니의 조국, 대한민국 서울이다.

지난 1975년 가난한 가수 지망생이었던 어머니는

다섯살 연하의 흑인병사 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내가 태어난 뒤 어머니는 곧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길고 외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있어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다.

경제력도 없고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던 어머니가 나에 대한 양육권을 못 갖는 것은 당연했다.
가끔씩 찾아와 “내가 엄마란다”라고 말하는 어머니는 내겐 낯설고 이상한 존재였다.

4년 후 내가 8살일 때 어머니는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양육권을 찾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려고 애썼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 것뿐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는 나에게 다가올 수 없었고

나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가 학부모 모임이 있었는데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어머니가

너무나 뜻밖에 학교에 왔다. 나는 고개도 못들고 바닥만 바라봤다.

그 일로 내가 동양계 혼혈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놀려대기 시작했다.

사춘기무렵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가 낡은 중고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면

나는 아이들 눈을 피해 얼른 내려 그속으로 총총 사라지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날 차에서 내리려는데 하필이면 아이들이 무리 지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오! 이런!’ 나는 얼른 차창 밑으로 몸을 숨겼다가

잠시 후 그애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차에서 내렸다.

몇걸음 가다 우연히 뒤를 돌아봤을 때 어머니는 고개를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참 이상한 느낌이었다.

‘ 내가 그렇게도 부끄러워하고 달아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라니.’

그날 저녁 집에서 어머니를 마주했을 때 난 어머니의 분노와 절망도 대면하게 되었다.

“ 내가 부끄러우면 아버지에게 돌아가거라.” 어머니는 너무나 슬프게 울고 계셨다.

그 슬픔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바로 그 순간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 나의 어머니를, 또한 나의 태생을 바꿀 수는 없는 거야.

반은 흑인 반은 한국인 그게 바로 나인걸, 내가 부끄러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의 아픔을 조금 이해하게 되자

바로소 나를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텔청소 식당일 등 하루 14시간씩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다른 아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것들을 누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 사랑한다 ’고 말로 표현 못해도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그 사랑을 묵묵히 몸으로 보여주는 분,

빈민층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도 받지 않고 삶에 대한 당당함을 가르치며

내 이름으로 돈을 저축해 우리가 살 작은 집을 마련한 분,

그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소리없이 울고 있으면

나는 말도 잘 안 통하는 어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함께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슬픔을 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그 눈물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눈물은 나를 또래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게 했다.

점차 어머니의 더듬거리는 영어 단어를 조합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영어로 된 고지서를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 또박또박 천천히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곧 나는 어머니가 먹는 그 한국음식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야구와 풋볼에서 인정받고 특기자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원칙 때문에

학교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고단한 삶속에 내가 다치지 않기만을 바라는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를 나는 알고 있었다.

조지아대학을 졸업하면서 프로무대를 꿈꾸게 됐다.

그러나 98년 NFL(미국 미식축구리그) 드래프트를 앞두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키가 작고 러닝백으로 뛰기에는 느리며 와이드 리시버로서도

경험이 많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믿음은 단순하고 한결같았다.

‘ 뭐든지 열심히 하면 그 끝에 좋은 결과가 있다. ’

당신이 낯선 땅에서 반평생을 살아오며 몸소 증명해 보인 삶의 법칙이었다.

어머니의 그 믿음을 보아왔기에 앞으로 나아갔다.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피츠버그의 부름을 받은 뒤,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이듬해 주전 선수로 오른 후 와이드 리시버로 4년 연속 1000야드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06년 동료들과 함께 팀의 우승을 일궈냈다.

그런 나를 보고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 하인스 워드는 큰 역경을 이겨낸 어머니를 닮았다.

그의 어머니는 절대 쓰러지는 법이 없는 NFL선수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워드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다.’

이번 슈퍼볼 우승 후,

나는 어머니에게 오래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한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새롭게 알게 됐다.

차별과 무관심 속에 신음하는 혼혈인들을 향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누군가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 현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이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들이 연약하고 불완전하기에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비뚤어진 잣대로 우리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하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정말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모습,

그분이 너무도 사랑하시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거기에는 피부색의 구별이 있을 수 없음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용감한 어머니가 가르쳐 주기 위해 평생 싸웠던 가치이다.

나는 어머니의 묵묵한 사랑과 가르침에 보답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고,

이제 그 약속의 아주 작은 부분을 아루었다고 부끄럽게 고백한다.

나의 삶에 작은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어느 하나도 내것이 아닌

어머니의 위대한 승리요, 위대한 기도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