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박사의 편~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 여대생의 큰 사랑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을 처음 만난 게 벌써 50년 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습니까.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지난 40년 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직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가슴 한 가득 품고 떠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눈망울이 뜨거워지는, 마지막 사랑의 편지입니다.

강영우 박사. 중학생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 UN세계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봉사의 삶을 펼친 인물입니다.

 

강 박사는 24일 미국 버지니아의 자택에서 68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가 췌장암으로 투병하면서 부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지상에서 울릴 겁니다,

잔잔하면서도 영원하게….

 

강 박사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곧이어 어머니와 누나마저 잃었습니다.

두 동생과도 뿔뿔이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실명 1년 전에는 아버지도 돌아가셨지요.

2년을 암흑 속에서 자살의 유혹과 싸웠습니다.  

2년 동안 교회에서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1년 동안 점자를 배우다보니 친구들이 대학교 캠퍼스에서 낭만의 시간을 보낼 때

서울맹학교에서 중1 과정부터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마음이 눈부신 사람이 있습니다.

강 박사는 한국걸스카우트 본부의 시각장애인프로그램에 등록하러 간 첫날,

위로 어깨동갑인 부인을 만납니다. 

자원봉사를 하던 숙명여대 1학년생이었습니다.

비록 청맹과니였지만 ‘마지막 편지’에서 쓴 것처럼

‘마음의 눈’으로 그 아름다운 얼굴을 '뚜렷이' 봤습니다.

누나는 온갖 편견과 싸우며 동생을 뒷바라지했습니다. 

늘 책을 읽어주었고 소풍 때에는 도시락까지 싸줬습니다.

박사는 ‘천사 누나’의 헌신어린 도움 덕분에 연세대에 진학할 수가 있었습니다. 

강 박사는 대학교 1학년 때 고마운 누나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는 “이제 우리가 오누이가 아니라 연인으로 태어나자”며 새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돌밭을 걷는 ‘석(石)’의 시기 10년이 지나면,

돌보다 귀한 ‘은(銀)’의 시기 10년,

은보다 귀한 ‘옥(玉)’의 시기 10년이 올 것”이라며

"석은옥’이라는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천사’는 자신의 이름 ‘석경숙’ 대신 새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강 박사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로 유학갈 수가 있었고

부부는 미국에서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갑니다.

강 박사는 장애인을 위해 자신을 바친 삶을 살았습니다.

 

부부의 참사랑은 두 아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교육이었습니다.

장남 진석 씨(39)는 아버지처럼 앞 못 보는 사람을 돕기 위해 안과의사가 됐으며,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의 ‘안과 분야 슈퍼닥터’로 선정됐습니다.

차남 진영 씨(35)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강 박사는 두 아들에게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해보기도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다.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 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내가 떠나더라도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기에 너희들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항상 함께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슬픔도, 걱정도 없단다”고 썼습니다.

또 강 박사가 지인들에게 e메일로 보낸 ‘감사의 편지’로

교민사회가 감동과 슬픔 속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40여 년 전 두 사람의 순애보가 지금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시에도 쉽지 않았겠지요.

(왼쪽 사진처럼 예쁜 외동딸이었던) 석은옥 씨의 경우,

가족과 친지의 반대가 없지 않았겠지요?

친구들도 반대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맹인과 결혼하다니 창피하다”며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상황까지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천사'는 친구들이 판사, 의사, 대기업 간부의 부인이 돼 있을 때

늦깍이 맹인 학사를 신랑으로 맞으면서도 활짝 핀 미소 때문에 

하객의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 강 박사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사랑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이악스러운 세상,

많은 사람이 상대방의 재력과 외모를 따지지만,

‘바보 같은 사랑’이 ‘큰 사랑’이 아닐까요?

이런 사랑이야말로 ‘행복한 사랑’이 아닐까요?

평생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이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랑,

아름다운 사랑!

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서 계속 울립니다.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 코메디닷컴에서 옮겨 실었습니다.

 

강영우박사의 편지글을 보며 가슴이 아리는 사랑과 헌신을 느껴 봅니다.

위대한 사람의 곁에는 늘, 위대한 조력자가 있다더니... 역시 부인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넉넉한 가슴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 그리고 변하지 않는 신념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련만....

 

할수 없는 일이 있는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것 뿐인데~~~

최선을 다하고 열성을 다하여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이 되어 보리라 다짐한다.

2월의 마지막 월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