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물이 57층서 만나는 곳

싱가포르 초대형 복합시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예술과학박물관
»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노천 옥상 수영장. 57층, 지상 200m 높이에 150m 길이의 수영장을 올렸다.
지상 57층,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수평선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다시 지평선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너머 보이는 것은 고층빌딩의 숲들, 그리고 반대편으론 마리나만의 바다였다. 지상 200m 위에 떠 있는 수영장은 공간감과 거리감을 모두 뒤섞고 있었다. 근경과 원경이 합쳐지고, 하늘과 물이 공중에서 만나는 모습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롭고 묘한 장면이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수영장’이라고 불리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옥상 노천수영장은 직접 보아야만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곳이다.

»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노천 옥상 수영장. 57층, 지상 200m 높이에 150m 길이의 수영장을 올렸다.

»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노천 옥상 수영장. 57층, 지상 200m 높이에 150m 길이의 수영장을 올렸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제공

파격적 디자인의 한계, 기술로 극복

휘어지고 비틀린 세 동의 초고층 건물 57층 꼭대기에 스노보드 모양의 거대한 지붕을 얹어 세계적 화제가 된 싱가포르의 새 명물 마리나 베이 샌즈가 최근 호텔 바로 앞에 독특한 모양의 예술과학박물관을 완공하면서 최종 개장했다. 한국 쌍용건설이 시공해 국내에서도 유명한 비스듬한 호텔 건물 못잖게 독특한 디자인이 두드러지는 예술과학박물관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열대과일 두리안 모양의 에스플러네이드 해변극장과 마리나만을 사이에 두고 누가 더 눈길을 끄는지 겨루듯 마주보고 있다. 마리나 베이 샌즈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공간이다. 거대한 카지노부터 객실 2561개를 갖춘 초대형 호텔, 4만5000명을 수용하는 컨벤션센터와 쇼핑센터, 뮤지컬 <라이언킹> 등을 공연하는 극장까지 비즈니스와 레저, 엔터테인먼트를 한곳에 모두 가져다놓은 복합시설이다. 코엑스와 롯데월드를 합치고 카지노와 미술관을 더해 해운대 중심에 지어놓은 셈이랄 수 있다.

» 기울어져 올라가는 모양의 독특한 호텔 모습. 세계적 건축가인 모셰 사프디의 작품이다.

» 마리나 베이 샌즈의 또다른 명물 ‘예술과학박물관’. 손가락 모양의 이 건물도 모셰 사프디가 디자인했다.

우리 돈으로 6조원가량 투입된 이 거대 관광단지는 세계적 카지노 체인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이 만들었다. 그래서 이 복합단지의 모든 목표와 핵심은 카지노의 도박수입이지만 단순한 도박장 이미지를 탈색시키고 다양한 볼거리로 포장하기 위해 ‘문화’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라지가 특색과 주제가 분명한 테마 공간으로 차별화해 치고 나간 이후 카지노업장에 불어닥친 테마파크화 트렌드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카지노들은 한국의 예식장들처럼 서양의 웅장한 궁전이나 베네치아 같은 유명 장소를 그대로 복제한 화끈하고 화려한 건물 꾸밈새로 승부하는 것이 한동안 추세였다. 하지만 마리나 베이 샌즈는 거꾸로 가장 현대적이고 이색적인 ‘건축’으로 새로운 카지노 관광지를 시도했다. 그래서 선택한 해결사가 바로 세계적 건축가인 모셰 사프디(72)다.

 

이스라엘 출신 캐나다 건축가인 모셰 사프디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명소 야드 바솀 박물관, 인도 아난드푸르의 역사박물관인 칼사 문화유산센터, 미국 유타의 솔트레이크시티 시립도서관과 매사추세츠 미국연방법원 건물 등 기하학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넘치는 디자인의 건물들을 설계한 현대 건축의 거장이다. 매번 예상을 깨는 기발한 건물을 선보여온 모셰 사프디는 고층건물은 구조적 특성 때문에 파격적인 디자인이 어려운 한계를 기술로 극복하며 21세기 새로운 스타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얇은 판 모양 구조물이 합쳐져 건물을 이루고, 판 구조의 사이는 비어 있는 내부공간이 되는 3개 건물 위에 다시 옥상판을 얹어 건물 3채가 긴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 기울어져 올라가는 모양의 독특한 호텔 모습. 세계적 건축가인 모셰 사프디의 작품이다.

‘스카이파크’란 이름의 이 지붕은 면적이 1만2400㎡로, 축구장 3개 넓이이다. 150m에 이르는 긴 수영장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나무 250그루를 심은 공중 정원과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 있다. 수영장은 난간을 약간 낮게 거리를 두고 설치해 얼핏 보면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아 풀장의 수면과 하늘이 바로 맞닿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연중 여름이고 태풍과 강풍이 적은 싱가포르에서만 가능한, 물놀이를 하면서 200m 높이에서 싱가포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되는 수영장이다.

 

예술과학박물관은 길이 다른 열 손가락 모양

이 랜드마크 건물 바로 앞 해변가 절벽에 새로 지은 예술과학박물관 역시 모셰 사프디의 디자인을 잘 보여주는 볼거리다. 호텔 외벽의 푸른 유리창과 파란 바다 사이에 새하얀 10개의 손가락이 모인 모양으로 단번에 눈길을 끈다. 이 박물관은 길이가 서로 다른 하얀 손가락 모양 구조물 하나하나가 전시 공간이며, 건물 전체는 얇은 지지대 위에 가볍게 올라타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오목하게 모이는 천장에는 빗물이 담긴 뒤 가운데 원통형 내부로 폭포처럼 떨어지며 계속 순환된다. 가볍고 경쾌하게 곡선을 그리는 손가락 외부 표면은 고성능 경주용 요트에 주로 쓰는 특수강화섬유유리로 시공했다.

 

» 호텔 내부 모습. 건물 중간을 모두 비우고 유명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작품 ‘드리프트’를 천장에 달았다.

» 호텔 카지노. 화려한 인테리어로 꾸며 식당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박물관의 완공으로 마리나 베이 샌즈는 도박장부터 뮤지컬 극장, 고대유물 전시장까지 관광지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을 한곳에 끌어모아 단지 안에서 나가지 않고도 모든 것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21세기형 복합관광시설의 전략을 구현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과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줄지어 선 아케이드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고, 해변 실외 공간이 다시 하나로 연결되는 이 작은 도시는 세계 유명 도시의 거대 복합건물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오래된 역사적 이미지, 독특한 지역 문화 없이 관광객을 끌어모으려는 싱가포르의 야심과 국제 카지노 자본이 만들어낸 욕망과 환상의 결합체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래 벌써 1100만명이 이곳을 찾아왔을 만큼 이 유례가 없는 공간의 힘은 분명 충분히 매력적이다.

싱가포르=글·사진 구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