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의 잎사귀 / 이해인

    수첩을 새로 샀다
    원래 수첩에 적혀있던 것들을
    새 수첩에 옮겨 적으며 난 조금씩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어느 이름은 지우고
    어느 이름은 남겨 둘 것인가
    그러다가 또 그대 생각을 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이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이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