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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가 내다본 메르스 사태

 


“이 연대기가 주제로 다루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의견에

 따르면,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에서 벗어나는 사건치고는 그것이 일어난 장소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 오랑은 하나의 평범한 도시로서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의 첫 대목에서 묘사했듯이 죽음의 돌림병은 평범한

 도시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게 됩니다. 주택가 계단에 쓰러진 쥐 한 마리가 신호탄이었지요.

 곧이어 건물 내부의 복도에서도 피를 토한 채 웅크리고 있는 쥐가 발견됩니다. 사람들에게도

병원균이 옮겨붙어 격리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온 나라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정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20여 일 전까지만 해도 이런 끔찍한 상황이 닥치리라고 어느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미 확진 환자가 100명을 넘어섰고 9명이 사망했으며 격리 대상자만

해도 무려 3,400여 명에 이릅니다. 초·중·고교도 집단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주말로

고비를 넘길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지만 그렇게 쉽게 잡힐 기세가 아닙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서 위세를 떨친다는 이 병원균이 도대체 왜

 한국에서 마치 제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을까요. 계절적으로 여름철이라

 날씨가 중동처럼 덥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풍토 여건은 취향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초동 대응에 섣부르게 나섰다가 사태를 키운 것입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서로 안전의식을 되뇌었으면서도 정작 속마음은 딴 데 팔려 있었던 탓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집으로 돌아오면 손을 닦는 방법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니 말입니다. 그나마 당초 40%에 이른다는 치사율이 우리 여건에서는 훨씬 낮아진

것으로 확인된 정도가 다행입니다. 지역 감염 사례도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인 공포감이 덜해진 것도 아닙니다.

앞서 ‘페스트’의 내용처럼 카뮈는 전염병의 집요한 공세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줍니다. 나름대로 환자의 고름을 뽑아가며 돌보는 사람도 있고, 갈피를 못 잡고 흐트러진

공동체의 질서를 찾으려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결국은 허물어지기 마련입니다. 비참한 현실에 부딪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의사나 신부, 신문기자, 공무원이 무기력하기는 모두 비슷합니다. 도시는

 이미 폐쇄되어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다 보니 페스트는 신이 내린 심판이며,

따라서 거역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간주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골목마다

죽은 쥐가 널브러진 도시 안에 꼼짝없이 갇혀 전염병의 처분만 기다리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긴,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전염병 가운데서도 페스트만큼 무서운 질병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름조차 ‘흑사병’입니다. 14세기 당시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는 인구의 30~40%가 목숨을 잃었다는 추계까지 전해질 정도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페스트가

 번진 적이 있었습니다. 카뮈의 소설은 그때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신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작중의 무대가 된 알제리에서 태어났다고 하지요.

그러나 페스트가 아니라도 인류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의해 끊임없이 곤욕을 치러

 왔습니다. 근년에 나타난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이나 에볼라, 사스, 신종플루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콜레라,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전염병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꾸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번의 메르스도 그러한 경우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전염병이 계속 모습을 바꿔가며 공격을 감행하는데도 사람들의 대응은

 무사안일하기 일쑤라는 점입니다. 이번에도 초동 대응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후속

조치에서도 계속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의심환자 받기를 거부한 병원이 있었는가 하면

격리 대상자가 버젓이 여기저기 나돌아 다녔습니다. 감염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학생들이 단체 건강검진을 받았던 경우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보건당국이나 병원, 감염자

 모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요.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사태가 확대될 대로 확대된 뒤에야 감염자들이 거쳐 간 병원 이름이

 공개됐다는 점입니다. 당국이 일반 국민들의 감염 우려보다는 병원의 운영을 더 걱정했던

것이 아닐까요. ‘감염병 예방법’에는 “국민은 감염병 발생 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그 권리를 명백히 침해당한

것입니다. 국민들이 최소한의 자구책도 행사하지 못한 게 그런 까닭입니다.

이번 메르스 파동이 가라앉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변형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에

 쳐들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식이어서는 그때마다 피해를 키우기 마련입니다.

애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카뮈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실존주의 작가로서 요즘의 한국 사태를 과연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합니다.

 "병원균은 우리 각자 내부에 존재한다"는 '페스트'의 한 구절을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