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빵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은 빵보다는 빵집이라는 공간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갓 구워낸 빵들이 쌓여 있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풍성해지고, 오븐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에 내 몸도 빵처럼 부푸는 것 같다. 특히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빵집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줄을 한참 서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영국 바스에 가면 생긴 지 삼백 년도 더 된 빵집이 있다. 살리 런(Sally Lunn)이라는 프랑스 여인이 이 집에서 빵을 만들어 필기 시작했던 것은 1680년이라고 한다. 부드럽고 둥근 빵 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토핑으로 얹어 내오는데, 아주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서 먹은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빵집에 자주 들렀다는 제인 오스틴이나 찰스 디킨스 등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고, 지하에는 작은 빵 박물관도 있다. 이쯤 되면 빵을 먹는다고 하기보다는 빵에 깃든 역사와 기억을 맛본다고 해야 할까.


   이병률 시인의 산문을 읽다보니, 파리에 있는 백 년 된 빵집 얘기가 나온다. 이 빵집이 바게트의 맛을 한결같이 유지해온 비결은 반죽을 할 때 그걸 조금 떼어두었다가 다름 반죽을 할 때 넣는 데 있다고 한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백 년 된 기억이 조금씩 귾임없이 섞이면서 빵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재료나 향신료를 넣지 않고도 늘 같은 맛을 유지하는 그 비법은 평범애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옛날식 제빵기와 반죽 도구들이 남아 있고, 화덕과 오븐에는 그을음이 내려앉은 오래된 주방. 그곳에서 매일 작은 빵들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 대대손손 빵을 먹으며 살아온 인간의 역사가 바로 그 정직한 손길에서 이루어졌다. 어디 빵 굽는 사람뿐인가. 빵 속에 깃들어 있는 햇빛과 비와 바람, 그리고 곡물을 길러낸 농부의 땀방울까지 떠올린다면, 빵을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우주적 행위처럼 여겨진다.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 "빵을 가지러 가는 네 손을 낮추어라"하고 노래한 것도 그 장엄함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글출처 : 나희덕(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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