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체 뻐기면서 남을 깔보지 말라.

    어진 행동을 닦는 데는 겸양이 근본이고, 벗을 사귀는 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이 된다. 너니 나니 하고 교만이 높아지면 삼악도의 고통 바다가 더욱 깊어진다. 밖으로 나타난 위의는 존귀한 듯 하지만 안은 텅 비어 썩어빠진 배와 같다. 벼슬이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뜻을 겸손히 해야 한다. 너니 나니 하는 집착이 없어지는 곳에 도는 저절로 이루어지며 마음이 겸손한 사람에게는 온갖 복이 저절로 돌아온다.
교만한 티끌 속에 지혜 묻히고
나니 너니 하는 산에 무명자란다.
남을 깔보며 안 배우고 늙어지면
병들어 신음할 때 한탄뿐이리.
                            [野雲比丘 / 自警文] 
    지난 연초인 1월 2일 오후였다. 건망증이 심한 내가 그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날의 일이 내 기억의 창고에 어지간히 깊게 자리한 모양이다. 한겨울이라 바람 끝은 차가왔지만 밝은 햇살이 비쳐 벗어놓은 옷가지를 빨아 널었었다. 이내 강정처럼 얼어붙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한 아름 지펴 놓고 방바닥에 언 빨래를 널어놓았다. 나는 이따금 이런 식으로 겨울 빨래를 말린다.

    오후 두 시쯤 되었을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저 아래서 올라오는 소리가 울려왔다. 마당에 들어서는 걸 보았더니 8, 9인이나 되었다. 4,50대의 남자 두 분과 그들의 아내인 듯 한 중년여자 둘, 그리고 중고등학생 서넛. 일행 중에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작달막한 할머니 한 분이 끼어 있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층계에 올라서자마자 서슬이 등등하여 숫제 반말지거리였다. ‘구산’이 어떻고 ‘일각’이 어떻고 스님들의 이름자를 대면서 왕년의 자신을 과시하듯 갖은 오만을 다 떨었다.

    나는 속으로 별 희한한 노인을 다보겠네 하면서, 보살님 춘추가 올해 몇이냐고 물었더니 갓 스물이라면서 시집을 한 번 더 갈까 한다는 것이다. 70이 넘은 노인이 주책이 어지간했다.

    일행도 많을 뿐 아니라 방안에는 젖은 빨래를 널어놓은 터라, 추녀 밑 양지쪽에 서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돌려보내기가 안 되어서 어른들한테는 ‘보왕삼매론’을 한 장씩 주었고, 아이들한테는 그림엽서를 나누어 주었었다.

    함께 온 중년 여인을 나를 보더니 “스님이 웃을 줄도 아네요.”라고 하면서 내 면전에서, 실제 얼굴보다 사진이 너 낫다고 했다. 그리고 시집을 한 번 더 갈까한다던 그 20대의 할머니는 내려가는 길에 내게 할 말이 있다면서 “와서 보니 멀리서 소문 듣던 것만 못하다.”면서 공연히 높은 데를 올라왔다고 투덜거렸다.

    그들이 내려간 뒤 그들을 인솔하고 왔던 경상도의 한 절 주지스님이 하는 말인즉, 자기 절에 다니는 신도들인데 아들이 법관으로 재직 중이라면서, 큰 절에 들렀더니 알만한 스님이 없어 여기까지 모시고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여러 계층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을 대해 왔지만, 그 노파처럼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은 일찍이 대해보지 못했었다. 아들인 법관은 말이 없이 점잖기만 했는데, 그 어머니는 자칭 불교신도라면서 신도의 예절은 차치하고 그 나이에 사람이 지녀야 할 예절과 품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들이 법관이라고 해서 그 어머니가 서슬이 등등하고 오만 무례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법관인 아들의 후광으로 절에 가면 특대를 받는 모양이었다. 그 어머니에 그 딸(며느리인지도 모르겠다)이라고 생각하면서 떨떠름한 기억을 지니게 되었다.

    정초부터 내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해 선지식들이 찾아온 것이라고 나는 애써 생각을 돌이켰다. 시주 밥을 얻어먹고 사는 처지라, 동네북처럼 이놈도 와서 쳐보고 저 놈도 와서 건드려 보는 데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제멋대로 사는 우리 같은 중들이야 익힌 예절도 없고 어디 기댈 데도 없으니까 이따금 오만도 떨고 목에 힘을 주면서 큰소리도 치지만, 훌륭한 아들딸이며 똑똑한 며느리와 손자를 거느리고 유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무엇 대문에 오만을 떠는지 알 수가 없다.

    하기야 요즘 절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겸손보다는 아만과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이름 없이 묻혀서 지내는 뒷방 노스님들한테는 수행자의 미덕인 겸손이 남아 있지만, 선원이고 강원이고 할 것 없이 공부 좀 합네 하는 스님들한테서는 그런 미덕을 찾아보기가 요즘에는 힘들다.

    더구나 종단의 코고 작은 직책을 때게 되면 하루아침에 고개가 굳어져 겸손과 온유를 찾기 어렵다. 이제는 자리에서 떨려나고 말았지만, 우리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어떤 선덕은 종단의 직책에 추대되자 그 몸가짐이며 처신이 너무나 돌변해 버린 바람에 적잖이 실망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실망할 필요조차 없이 수행자로서 추하게 변신하고 말았지만, 한때는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하고 누구나 입을 다실만큼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덕이 높을수록 겸손하고 온유해지는 법이다. 그것은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질서다.

    ‘중벼슬 닭벼슬만도 못 하다’는 말이 있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그 어떤 관사(冠詞)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 공동체의 책임을 맡아 있을 경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때의 소임(직책)이고 봉사직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소임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전유물처럼 착각하여 뽐내면서 거드럭거린다면, 그것은 수행자 이전에 인간의 자질 문제에 속한다.

    종단의 사무직을 맡은 인사들이 가끔 그 직책에 집착하여 빗발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는 한심스런 사례를 볼 때마다 새삼스레 수행자의 양식과 자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독선적인 자기 고집만을 부릴 뿐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대중의 이름을 도용한다. 그런 결과는 번번이 시행착오를 가져와 일을 그르치는 수가 허다하다.

    보살계본인 [범망경(梵網經)]에 이런 제문이 실려 있다.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법문을 청해 들으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총명한 재주를 믿거나 지위·나이·문벌·재산 같은 것을 믿고 교만한 생각을 먼저 배운 선배에게 경과 율 배우기를 싫어하지 말라. 법사가 비록 나이 젊고 신분이 보잘 것 없고 용모가 온전치 못하더라도, 학덕이 있고 경과 율을 잘 안다면 그에게 배워야 한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법사의 문벌이나 따지면서 법을 배우지 않으면 죄가 된다.”

    법문을 청해 들으란 말은, 남의 말이나 가르침을 듣고 배우라는 뜻이다. 사람은 듣고 배울수록 거듭 사람이 되어 간다. 듣고 배움이 없으면 성장이 중단되고 아집만 늘어나 사람은 굳어지고 무디어진다. 그래서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오만하고 무례하게 되는 것이다.

    스님이나 목사나 신부들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설법의 자리에서까지 가끔 반말지거리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도취에 빠진 오만 무례한 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신앙인들은 너나없이 깊이 방성해야 할 일이다.

    ‘벼슬이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뜻을 겸손히 해야 한다’는 가름침은 깊이 새겨 두어야 할 법문이다.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사람도 이삭처럼 겸양의 덕을 배워야 한다.
(86. 7)
글출처 : 물소리 바람소리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