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그런 체벌(體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유년시절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떠는 개구쟁이들은 곧잘 교단 앞에 불려나가 걸상을 들고 한참씩 서 있다가 들어오는 이이 있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은 유달리 칠판을 향해 돌아서 있으라는 체벌을 가하곤 했었다. 낯익은 동무들과 마주보고 있으면 얼마쯤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눈짓으로나마 교신(交信)을 할 수 있어 벌쓰는 느낌이 덜한데, 뒤돌아서 홀로 칠판 쪽을 보고 있으면 어린 생각에도 단절과 막막한 외로움을 절감하던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마주볼 때보다도 더욱 창피하고 외톨이라는 느낌 때문에 몇 갑절 괴로웠던 것이다. 내 뒷모습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사뭇 불안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우리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남의 눈을 통해서 얻어들을 수는 있어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앞모습이나 옆모습은 거울을 보고 대충 알 수 있지만 뒷모습만은 본인의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물론 두 개의 거울을 가지고 되비추어 모습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실상(實像)이 아닌 허상(虛像)의 그림자 같은 것.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안쓰럽고 애처롭게 여겨질 때가 있다. 이건 내 편견일지 모르지만, 돌아서 걸어가는 사람을 볼 때라든가, 버스 안 앞자리에 않은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가려진 뒤뜰을 넘어다보는 것 같다. 정면으로 대할 때는 의젓하고 뻣뻣하고 목에 힘을 주어 오만한, 그래서 조금은 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뒤돌아선 모습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나약한 점이며, 홀로 외롭게 저벅저벅 걸어가는 유한(有限)하고 불완전한 덧없는 존재 앞에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면에는 그 사람의 교양이며 사회적인 지위, 혹은 영양 상태와 치장과 허세로써 얼마쯤은 위장할 수 있지만, 후면(後面)에는 전혀 그런 장치가 가설될 만한 오관(五官)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멀리 떠나갔을 때 내게 축적되고 정제되어 떠오르는 모습이 또한 그 사람의 뒷모습일 것이다. 또 늘 가까이 있어도 눈 속의 눈으로 보이는, 눈을 감을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모습이 뒷모습이다. 사람은 이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이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겪는 일인데, 입산출가(入山出家)에 뜻을 둔 20대와 젊음들이 구도(求道)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떠나갈 때, 저만큼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아득히 지나가버린 내 자신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무거운 침묵의 바다에 잠긴다.

    한해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그 해가 어떤 해였던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세월의 뒷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그 세월을 올바르게 가차 평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예측할 수 없이 변덕스러운 사람이 생각이라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뭐라 단정해서 평가할 수 없다. 그의 관 뚜껑에 못을 박아놓은 후에라야 그를 엄밀하게 평가할 수 있다. 어떤 사회 현상도 한 시대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악장(樂章)까지 다 들어본 뒤에야 그 연주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를 잴 수 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어떤 신생 공화국에서는 한동안 비방죄란 엉터리법을 만들어내어 과중한 형벌로써 무고한 주민들을 괴롭힌 적이 있었다. 통치수단치고는 형편없이 옹졸하고 졸렬한 수단이었다. 수천만 명이 모여 사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그 생각과 뜻이 한결같을 수 잇을 것인가. 명령일하에 기계처럼 움직이는 군대조직이 아닌 다양한 시민사회(市民社會)에서는 보는 입장과 가치 기준에 따라 그 생각과 뜻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건정한 비판의 자유를 허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정당한 말이 비방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귀에도 결코 설지 않는 유언비어(流言蜚語)란 것도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 아래서 나올 수 있는 뜬소문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고 해서 말길을 강압적으로 막아버리면 그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새어나오게 마련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주(周)나라 여왕(厲王)의 폭정에 대해서 백성들이 불평불만의 소리가 날로 높아간다. 왕은 백성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더욱 더 엄별 일변도로 혹독하게 다스린다. 백성들은 자연 서로 말하기를 꺼려하고 아는 사람끼리 마주쳐도 눈치만 살피게 된다.

    기분이 좋아진 왕은 소공(召公)이라는 신하에게 이렇게 뻐긴다.

    “보라, 강압정책을 쓰니 백성들은 찍소리도 못하지 않는가.”

    소공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것은 단지 입을 막아버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을 통하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물이 둑을 무너뜨리는 날에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백성들의 입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물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물길을 만들어 물이 순조롭게 흐르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백성들이 입을 열고 자유롭게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말했던가. 아틀리에의 광선보다 광장의 햇살을 두려워하라고.

    개방체제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 사회, 세계 속의 코리아로 발돋움하려는 우리나라.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시만의 대열에 어깨를 겨루고자 한다면 뭣보다도 먼저 개방의 촉매제(觸媒劑)게 될 언론의 문호부터 활짝 열려져야 할 것이다. 밀실의 수군거림만 있고 광장의 대화가 없다면 그것은 개방이 아니라 폐쇄다. 밝은 사회, 깨끗한 나라를 이루려면 인간의 의사가 막힘없이 교류되어 불신과 의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언론이 주눅 든 아이처럼 당국의 눈치나 살피면서 사회의 목탁 구실을 못한다면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막혀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정당한 언론의 자유가 누려져 시민으로서 알 권리와 보도기관으로서 알릴 의무가 제대로 이행될 때 우리는 우리 시대를 형성해 나아가는 동참자로서 그 사명과 긍지와 책임감을 함께 나누어 가지게 될 것이다.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한 기록을 역사라고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뒷모습이 곧 이 시대의 역사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실상인 뒷모습은 누가 만드는가. 그것은 그 어떤 특정인이나 계층이 아닌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 양상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저마다 스스로 자기 얼굴을 만들어가듯이.

    사회이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별개의 틀에서가 아니라 병행하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어느 한 쪽도 소홀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다. 우리 시대의 뒷모습을 세계시민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상기한다면, 다스리는 쪽에서나 다스림을 받는 쪽에서나 일상적인 동작 하나하나에도 깊은 뜻이 주어져 있을 것 같다.
(1982. 2. 6)

글출처 : 산방한담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