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이 되지 않았으면 목수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잇다. 일용에 쓰일 물건을 만들기 위해 연장을 가지고 똑딱거리고 있으면 아무 잡념도 없이 즐겁기만 하다. 하나 하나 형성되어 가는 그 과정이 또한 즐겁다.

   며칠 전에도 아궁이의 재를 쳐내는 데 쓰일 고무래를 하나 만들었다. 전에 쓰던 것이 망가져 다시 만든 것이다. 톱으로 판자를 켜고, 나뭇단에서 자룻감을 찾아 알맞게 다듬고 똑딱 똑딱 못을 박아 완성해 놓았다. 시험 삼아 새 고무래로 재를 쳤더니 고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아궁이 속이 말끔해졌다. 아국이 속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야 불도 잘 들인다.

   고무래 같은 걸 시장에서는 팔지도 않지만 만약 그걸 돈을 주고 사다가 쓴다면, 손수 만들 때의 그 즐거움은 누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처음 불일암에 들어가 만든 의자는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멀쩡하다. 장작더미 속에서 쓸 만한 참나무 통장작을 고르고 판자 쪽을 잇대어 만든 것인데, 사용 중에 못이 헐거워져 못을 다시 박은 것 말고는 만들 때 그대로다. 그때 식탁도 함께 만들었는데 몇 차례 암주가 바뀌더니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산중에서는 재료로 쓰이는 나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재목의 크기와 생김새에 따라 그에 맞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큰절 헛간에서 굴러다니던 밤나무 판자를 주워 다가 대패로 밀고 톱으로 켜서 맞추어 놓은 폭이 좁은 서안(書案)은 지금도 그 암자의 큰방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중노릇과 목수 일을 간단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순수하고 무심하기로 말한다면 중노릇보다 목공일 쪽이 그 창조의 과정에서만은 훨씬 앞설 것이다. 사람끼리 어우러지는 중노릇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생놀음’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하고, 삶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참으로 좋아서 하는 직업인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그 일이 좋아서,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가 아니라,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도 지니지 않고 책임감도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일과 사람이 겉도는 불성실한 직업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일을 하지만 그 일에 흥미가 없으면 일과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책임을 느낄 때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이 되어 간다.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장인(匠人)들은 그 일에 전 생애를 걸고 있다. 그들은 보수에 넋을 팔지 않고 자신이 하는 그 일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순간순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55세 혹은 60세가 되면 직장에서는 일을 그만 쉬라는 정년(停年)을 맞는다. 그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흥미와 책임감을 지니고 활동하고 있는 한 그는 아직 현역이다. 인생에 정년이 있다면 탐구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멈추는 바로 그 때다. 그것은 죽음과 다름이 없다.

   타율적으로 관리된 생활방식에 길들여지면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심화시킬 그 능력마저 잃는다.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는 하루하루 마모되어 가는 기계나 다름이 없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인내와 열의와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옛날 장원의 한 영주가 산책길에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젊은 정원사가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정원이릉ㄹ 하는 것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정원을 구석구석 아주 아름답게 손질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 정원사는 자기가 관리하는 나무 화분마다 꽃을 조각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영주는 그 젊은 정원사를 기특하게 여겨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화분에다 꽃을 조각한다고 해서 품삯을 더 받을 것도 아닌데, 어째서 거기에다 그토록 정성을 기울이는가?”

   젊은 정원사는 이마에 밴 땀을 옷깃으로 닦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정원을 몹시 사랑합니다. 내가 맡은 일을 다 하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이 나무통으로 된 화분에 꽃을 새겨 넣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이 한없이 즐겁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영주는 젊은 정원사가 너무 기특하고 또 손재주도 있는 것 같아 그에게 조각 공부를 시킨다. 몇 년 동안 조각 공부를 한 끝에 젊은이는 마침내 크게 이룬다. 이 젊은 정원사가 뒷날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최대의 조각가요, 건축가이며 화가인 미켈란젤로 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의와 기쁨을 가지고 품삯과는 상관도 없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는 화분의 나무통에 꽃을 아름답게 조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5분이나 10분만 더 손질을 하면 마저 끝낼 일을 시간이 됐다고 해서 연장을 챙겨 떠나는 요즘의 야박하고 약삭빠른 일꾼들 눈으로 보면, 그 젊은 정원사는 숙맥이요, 바보로 보일 것이다. 자신의 일에 애착과 책임감을 가지고 기꺼이 땀 흘리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는 높고 귀한 존재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