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한 다섯 집이 모여 저녁을 함께 먹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이르렀습니다.

 

  이웃 중에 가장 연장자인신 50대의 선배님이 이런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아들이 열다섯 살 때 일이었어요. 그때 우리는 싱가포르 지사 근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국제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나는 아침마다 아파트 15층에서 아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는데, 그날 아들은 스쿨버스를 타지 않고 그대로 길을 걸어서 다른 곳으로 가더군요. 뛰어 내려가서 아이를 막기에는 이미 늦었고,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을 거리까지 아들은 걸어가버렸습니다.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아이 학교로 달려갔어요. 혹시라도 걸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했던 거지요.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더군요.   그날 학교에 오지 않은 아이가 셋이었는데, 그 세 아이가 평소에 아주 친했던 아이들이라고 학교에서 알려주었어요.

 

  '세 아이가 어떤 결심을 하고 결석했구나. 어디 가서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어쩌지?' 

 

  나는 조바심이 나서 이들과 함께 결석한 다른 아이들 집을 찾아갔어요. 그 집 부모님들과 함께 찾아 나섰지만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잘 아시겠지만 싱가포르는 아주 작은 도시국가인데도 그날은 지구처럼 넓게 느껴졌어요.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한테는 그렇더군요.

 

  시간이 많이 흘러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세 엄마는 그때까지도 여기저기로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어요. 그때 세 아이는 영화도 보고 놀이공원에도 갔다가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대요. 그런데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친구들에게서 '엄마가 학교로, 친구들 집으로, 사방으로 너를 찾으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아이는 그 길로 가출을 했어요. 두려웠던 거지요. 그날 밤 내내 우리는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아이는 연락을 해왔어요. 울면서 말이지요.

 

  나는 그때 아이가 제 발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한 짓을 뼈저리게 후회했어요. 걱정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다려줬더라면 아이는 그날의 방황을 그날로 마감하고 자기 인생에 새로운 경험 하나를 추가하며 조용히 돌아왔을 텐데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아이는 그냥 생애 첫 모험을 떠났는데, 대가 그걸 기다려주지 못한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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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첫 모험을 떠났던 아이, 그 아이가 돌아올 것을 믿으며 기다려주었더라면, 아이는 자기만 아는 아주 괜찮은 비밀 하나를 갖게 되었겠지요. 기다려준다는 것, 그리고 믿어준다는 것,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이라는 것을 배우는 저녁이었습니다.

 

글 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