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고 있는 선배가 해준 이야기 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터키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라크 국경지에 가까운 쿠르드 족의 유적을 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연 많은 할머니의 가슴처럼 오래된 유적들을 간직한 마을을 찾아가는 길. 하루면 그 유적들을 보고 돌아올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그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버스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그곳에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긴 빈틈없이 짜인 패키지 관광 루트도 아닌 곳을 뜬소문 같은 사람들의 말만 믿고 떠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기는 했겠지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버스는 그저 달리기만 하고, 사방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밤. 아이이 손을 꼭 쥐고 버스 안에 앉아 있던 그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때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한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가진 그는 앙카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고는 불쑥 지갑을 열더니 그 안에 들어 있떤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남자들의 지갑에는 대개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이 들어 있기 마련인데, 그는 아버지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안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버스가 오늘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그곳에 여행자들이 묵을 호텔은 있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물론 버스가 그곳을 도착하긴 할 겁니다. 호텔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할 테고, 호텔을 찾으려면 또 많이 걸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저희 가족들이 무척 반가워할 겁니다."

 

남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순박한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호의 어린 말마느로도 정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버지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라 할지라도 낯선 사람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초면에 그런 신세를 질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그냥 호텔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너무나 슬픈 얼굴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크르드 족 사람들은 해가 지고 난 후에 만난 나그네를 그냥 보내면 신(神)을 배반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그 남자의 눈빛, 그리고 해가 지고 난 후 만난 나그네를 그냥 보내면 신을 배반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그 부족 사람들의 깊은 정(情)은 너무나 아름다워서서 마치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그녀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종교적인 선의에 감동받은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남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운명에 맡기자는 생각을 하면서.

 

그 남자의 집에서 그녀는 너무나 성대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남자의 연락을 받고 인근에 사는 그의 가족과 친척들도 찾아와 소박한 음식과 따스한 마음으로 그녀를 환영해 주었다고 합니다.

 

*

 

해가 지고 난 후 만난 나그네를 그냥 보내면 신을 배반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 원래 세상은 그런 선한 마음들로 가득했겠지요. 언제부턴가 실종되어버린 그런 시대가 그립습니다.

선한 마음들을 세상 모든 곳에서 되살려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 나무생각) 중에서......

 

 

Moonlight Sonata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