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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부고는 심부름꾼이 전했다. 그 일이 우편집배원에게 넘어가더니 이제는 휴대폰 문자로 받아 보는 시절이 되었다.

할머니는 아흔네 해를 사셨다. 할머니의 노년을 지켜보면서 인생이 고적하다고 느껴질 때는 할머니 앞으로 부고가 배달되었을 때였다. 할머니는 이미 이웃 동네 출입을 못할 만큼 연세가 깊어서 문상이 힘들었다. 글을 읽지 못했던 할머니는 심부름꾼에게 부음을 전해 듣고는 “그 양반이 그새 가셨구나.” 하고 맥맥한 눈길이 되고는 하였다. 그리고 부고 봉투는 열지도 않은 채 집밖 돌담에 꽂아 놓고 돌아섰다. 그곳에는 시간과 일기에 누렇게 뜬 부고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한 해가 저물 무렵에는 그 부고들을 한데 모아 골목에서 소지(燒紙) 하듯이 태웠는데 그 모습 역시 고적했다.

할머니는 동기(同氣)가 모두 여덟이고 그중 맏이였다. 나는 그분들을 다 뵙지는 못했다. 손아래 할머니 한 분과 막내할아버지는 더러 집을 방문하여 뵌 적이 있었다. 특히 '사고시 할머니'라는 분은 방물장수라 해마다 한두 차례는 마을 지나는 길에 우리 집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였는데, 머리 허연 할머니들끼리 서로 언니, 동생 하며 밤새 도란도란 말씀을 나누는 정경이 애잔하였다.

어느 해부터 그분 발걸음이 뜸해지더니 이내 부음이 전해졌다. 할머니는 “순서가 바뀌었다.”며 애통해 하였다. 그 소리는 흔한 말이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할머니가 처음으로 가슴에서 토해 낸 말처럼 여겨진다. 막내아들의 주검을 손수 거두었을 때 할머니는 하늘을 향해 그렇게 소리치셨다. 몇 년 후 막내할아버지마저 부음을 전해 왔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동생들을 그렇게 하나씩 앞세웠고 노년에는 문상마저도 가보지 못했다.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른다.'는 옛 노래 <제망매가>의 한 구절처럼 할머니의 그런 내력에 닿으면 인생이 더없이 쓸쓸하게 여겨졌다. 그렇지 않은가. 한때는 먹고 입는 것 두고 서로 투덕거리기도 했을 것이며, 어린 손으로 동생들 낯을 씻기고, 시집 갈 때는 흩어지지 말고 다 같이 살자고 이불 두르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 생의 허망과 쓸쓸함을 할머니는 어떻게 견뎌 냈을까?
아직 우리 육 남매는 부모님을 앞선 사람 없이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전하며 살고 있다.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더러 병을 얻고 다쳐서 이제 마음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몇 년째 앓고 있는 어머니는 창자 끊는 고통으로 낳고 젖 물려 길러 낸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몇 차례 달을 넘겨 입원한 어머니를 곁에서 간병한 이는 큰형이었다. 그 역시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중병까지 덮쳐서 주위의 보살핌이 필요한 몸인데도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형 덕분에 나머지 형제들은 잠시 어머니를 잊고 생업을 돌보며 편한 잠자리에 든다. 큰형은 미안해하는 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 “일이 없는 내가 어머니를 맡을 테니 걱정 마라.”

주위 환자들이나 병원 사람들이 큰형을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큰형은 그런 소리를 들어 마땅하다. 형은 어머니 간병에 생의 모든 사명을 건 사람 같다. 때로는 어머니와 큰형 사이에 비집고 들 틈이 없는 것 같아 은근히 섭섭할 정도다. 한편으로는 병 깊은 큰형이 어머니를 통해 제 남은 날들을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머니의 목숨은 나날이 꺼져 가고 있다. 나는 이 분이 더 이상 세속적인 의미에서 내 어머니가 아닌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저 어느 인생이 고단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형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고 불경을 저지른 자처럼 죄스럽다. 어머니를 향한 형의 절망이 느껴질 때면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보다 더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나는 형이 더 걱정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어찌어찌 극복해 간다고 해도 큰형이 감내할 슬픔을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하다.

며칠 전 형이 말했다. “이제 어머니 보낼 마음 준비를 해야겠다.”
할머니가 그립고 생이 무거울 때면 들던 생각, 생의 허망과 쓸쓸함을 할머니는 어떻게 견뎌 냈을까? 하는 생각이 어린 아이들 곁에 누울 때면 문득 되살아난다. 이제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제 새끼 거느린 생은 고적한 대로 앞을 보며 견뎌 내는 것이며, 그렇게 생은 이어져 왔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세상의 큰형들인지 모른다.

 

글 출처 : 정용철 / 좋은 생각



작가소개
이야기 들려주는 남자, 전성태 님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늑대>,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과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가 있으며,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