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을 때/손종일



언제였던가

그 겨울, 첫눈 내리던 날.


뽀얀 얼굴의 널 만났을 때,

봉숭아 꽃물 들인 손톱이 다 지워지기 전에

첫눈이 내렸다며 넌 기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사랑은 분명 이루어져야 한다.

겨울 나무 위의 하늘처럼

늘 비어 있는 내게

너는 여름 잎사귀처럼

싱그럽게 다가와야 한다.

그 동안 못 다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가슴으로 나누며

이 도시에서의 가장 기쁜

연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