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과의 사랑은/도종환



오랫동안 당신을 잊고 지냅니다

당신을 잊고 지내는 동안

나는 싸움의 한복판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하늘보다 먼저 어두워지는 박태기나뭇잎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몰래 몇 번인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다가

머리를 흔들며 다시 걸음을 내딛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길은

당신과 언약한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당신과의 사랑은 영원히 하늘과 땅 사이에만 있지 않습니다

당신을 향한 버리지 못하는 내 가슴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 땅의 구석구석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외로이 당신 곁에만 있지 않고

싸움의 한복판에 있어도

당신은 내 곁에 있을 것을 나는 믿습니다

당신과의 사랑은

우리 모두가 서로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신도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속에 살아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혼자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당신이 내 가는 길 앞에 있고

새벽 강안개 세상을 씻으며 하늘에 오르듯

내 마음도 당신을 향해 늘 오르고 있으므로

또 오랫동안 당신 곁을 떠나 있게 된다 해도

우리가 큰 사랑의 안에 하나로 있는 것임을 나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