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밖에 또 다른 심장을 갖는 것.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일


    얼마 전 그녀는 뜻밖의 택배를 받았다. 시골에 계신 늙은 친정어머니께서 보내신 거였다. 아무 기별도 없이 받은 것이라 의아해서 열어보니 자생긴 무가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좁쌀이면 팥 등도 비닐봉지에 아기자기하게 싸여 올망졸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삐뚤삐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짧은 편지가 접혀 있었다.
무수가 잘 자랐지야? 김 서방이 무수짠지 조아허니 당거조라.
손자놈들 조아허는 콩도 보내니 니가 잘 메기거라. 아푸지 말고 잘 지내거라.
맞춤법도 엉망인 친정어머니의 그 짧은 편지를 읽은 순간 그녀의 마음에는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이런 거 시장에서 사먹으면 될 걸. 뭐 하러 이리 힘들게 보내시누.’

    택배 상자를 몇 번이고 꼭꼭 쌌던 노끈을 만지작거리는데, 마치 어머니의 거칠고 굵은 손 같아 마음이 더 애잔해졌다.

    지난 여름 남편은 그녀에게 휴가를 다녀오라면 봉투 하나를 주었었다.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남편은 말했다.

    “추석에 장모님께 다녀오지 못하니 당신이라도 미리 다녀와요. 나도 같이 찾아뵈어야 하는데······, 장모님께 말씀 잘 드려줘요.”

    그렇게 마음 써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이왕 가는 김에 한 일주일 넉넉하게 다녀오라는 남편에게 미안해 아이들 때문에라도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애들도 다 컸고 자신도 끼니쯤은 챙겨줄 수 있으니 걱정 말라며 등 떠미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그녀는 친정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작년보다 더 늙고 기운도 쇠약해지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그녀는 어머니와 모처럼 며칠을 행복하게 지냈다. 끼니도 챙겨드리고 빨래며 음식 마련까지 해야 할 일이 많고 고됐지만 마음은 한껏 가벼웠다. 그러나 그 며칠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들어가시라고 해도 굳이 버스 타는 곳까지 나오셔서 배웅하는 어머니를 버스 차창을 통해 바라보며 속으로 눈물 흘렸던 기억이, 택배 짐을 풀면서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며칠 동안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1남 3녀의 맏딸인 그녀는 어머니가 혼자 계신 것이 내내 마음 아픈 터였다. 그렇다고 외국으로 일하러 떠난 남동생은 야속하지는 않았다. 서러 사는 게 힘드니 그걸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자식들이 걱정할까 싶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지만, 나날이 늙어가는 몸에 힘든 일이 버거운 걸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지난번 친정에 다녀온 후로 그녀는 어머니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어머니가 생각나서 잠시 수저를 내려놓은 적도 많았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바리바리 담아 보낸 택배를 받으니 마음이 더 애잔해져서 밤새 잠도 편하게 잘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먼저 맺힐 뿐이었다.

    그 힘겨운 시절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다 하시느라 어머니는 참 힘들게 사셨다. 그러면서도 자식들 크는 만큼 당신도 보람 있다며 더 못해주는 걸 늘 안타까워하신 분이다. 그녀는 결혼하고 사느라 힘들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지낸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자신 낳고 키워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 삶이었는지 새삼 새록새록 느끼며 속이 짠했다.

    그렇게 며칠을 가슴에 멍을 품은 듯 애잔하게 보낸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이 친정에 내려가 살 수 없으니 장모님이 올라오셔서 함께 사시면 어떨까. 내가 맏아들도 아니잖소. 형님들께 슬쩍 떠봤더니 흔쾌히 동의해주시네. 적어도 처남이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우리가 모십시다. 시부모 모시는 처제들은 그럴 형편이 아니니 뭐라 하지 않을 거요.”

    여동생들이 그 일을 허물하거나 따지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게 처제들을 배려하는 남편의 마음인 걸 아는 까닭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친정 다녀온 뒤 마음 심란해한 거 다 알아요. 지난번 보내주신 택배 받은 뒤에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게 내내 힘들어했잖아요. 이제 우리 애들도 많이 컸고 숨 돌릴 형편도 되었으니 늦으나마 모셔옵시다.”

    그녀는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그저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하다가 사위의 간곡한 부탁에 그럼 잠시 머물다가 간다면 마지못한 듯 함께 차에 오리셨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모녀는 손을 꼭 잡고 행복해했다.

    “김 서방, 이러믄 안 되는디······.”

    어머니는 연방 그 말씀을 되풀이했지만, 딸과 외손자들이 함께 있어서 고맙고 행복했다.

    아이들이 좁은 집에 할머니가 계신다고 투정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할머니와 함께 자겠노라고 하는 것도 그녀는 고마웠다. 어머니는 분명 몇 달쯤 머무시다 친구들이 그립다고, 서울 생활이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며 부득불 내려가겠다고 하실 거라는 걸 그녀는 이미 헤아리고 있다. 그래도 당분간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했다. 마음으로는 평생 그렇게 함께 살기를 빌면서······.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