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야구 최고령 현역선수, 이종범. 그는 40대의 나이에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 있다.(註 : 이종범은 2012년 5월 16일 현역에서 은퇴하여 지금은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있다.) 이종범은 스스로 나서서 후배들과 똑같이 고된 훈련을 소화한다. 새파란 젊은 후배들과 주전 경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한다. 전성기 시절 무수히 기록을 갈아치우고 ‘야구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다. 이제는 머리가 있어도 몸이 따라오지 않아, 전성기 때처럼 벼락같은 스윙도, 시원한 홈런도, 날랜 도루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는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걷기보다 한사코 그라운드에 서기를 원한다. 후배들과의 경쟁으로 주전에서 밀려도, 몸이 따라오지 않아 타석에서 헛방망이를 돌려도, 스피드가 모자라 수비를 하다 공을 놓쳐도, 그는 몸을 더 만들어서 다시 후배들과 경쟁해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 그에게 그런 것들은 굴욕이 아니다. 그라운드에 서서 계속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권위주의를 내다버린 그에게서는 장인 정신의 향기가 느껴진다. 더그아웃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는 권위‘주의’가 없어도 ‘권위’가 느껴진다.

   정치부에 있을 때 언론사의 선배는 부장급이 넘은 나이인데도 전문 기자라는 이름으로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 와 있었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아침 회의, 의원 총회 등 굳이 본인이 가지 않아도 후배들이 녹취록을 다 만들어줄 회의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스타일이 있는 기사를 썼다. 가끔 사적인 모임에서 만날 때도 권위나 허세를 부리는 적이 없다. 늘 후배들을 존중했다.

   그는 그 뒤 편집국장이 되었다. 나는 그의 그다음 모습이 더 궁금했다. 취재기자로서 최고의 자리인 편집국장에 오른 그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나는 그 뒤에도 그가 여전히 어디에선가 기자의 직분으로 기사와 칼럼을 쓰리라 믿었다. 그는 지위로 사는 게 아니라 그저 기자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편집국장을 마친 뒤 정말로 다시 그렇게 돌아갔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미국에 갔다 오니 왜 이렇게 갑자기 한국이 낯선가? 40년 가까이 살았던 곳인데 말이다. 새로운 부서에 배치 받으니 후배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이제는 후배들 기수도 헷갈린다. 몇 년 아래인지도 모르겠다. 5년 아래나, 10년 아래나, 15년 아래다 다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 녀석들이 일도 참 잘한다. 나도 저 나이 때 저렇게 열심히 일했었나 싶다.

   그들은 알까? 나는 그들이 참 무섭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할까 봐 무섭고, 겉으로는 깍듯하면서 속으로는 선배 취급도 안 할까봐 무섭고, 괜히 친한 척했다 무시당할까 봐 무섭고, 어떻게 대하는 게 제일 괜찮은 방식인지 몰라 무섭다.

   “그래도 니들 아냐? 나는 싸가지 없는 니들이 참 좋다.”

글출처 :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박에스더, 쌤앤파커스)

지은이 박에스더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KBS(한국방송)에 입사해 보도국 기자로 경찰, 법조, 교육, 국회 등을 출입했다. KBS 최초의 법조 출입 여기자였으며,,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파키스탄 종군 취재를 했다. 한국의 '오리아나 팔라치'로 불릴 만큼 판을 읽고 흐름을 예측하는 데 뛰어난 감각을 발휘하는 현장기자다.

2004년 봄부터 만 4년간 KBS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를 진행했다. 당시 그는 정관계, 재계, 학계의 거물급 인사들을 델려다놓고, 말 못 할 속사정까지 낱낱이 털어놓게 만들어 청취자들을 열광시켰다. '한국에 이런 인터부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논리적이고 치밀한 그의 인터뷰는 미국 대통령이나 북한 주석과 인터뷰를 해도 '맞짱' 뜰 것 같은 특유의 포스로 유력 뉴스메이커들을 놀라게 했다.

1년 동안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다시 취재 현장으로 복귀해 현재 '취재파일4321'에서 활동하고 있다. 법조 출입, 종군 취재 등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탁워랗ㄴ 근성을 발휘하는 그는 집요함과 치열함으로 무장한 우리나라 대표 여성 저널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