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다. 그녀보다 공부를 더 못하는 친구들도 외국어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학원에 다니는 걸 보고, 자신도 외국어고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내내 죽도록 공부에 매달렸고, 우수한 성적으로 외국어고에 들어갔다. 모두들 칭찬해주었고,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했으며, 그녀 스스로도 으쓱하고 우쭐해졌다.

   그런데 외국어고의 생활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아침 6시 반에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1시였다. 주말에도 특별 과외를 위해 학원에 다녔다. 외국어 특성화 교육인 줄 알았더니 그저 입시 교육뿐. 친구들도 의대, 법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그놈의 내신 때문에 애들끼리 노트도 안 빌려주고, 서로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공부하고…. 삶이 점점 피폐해져갔다.

   하지만 진짜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생각해보니 하고 있는 공부가,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꿈은 원래 화가였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녀는 크게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부모님은 일단 대학부터 들어가란다. 선생님께도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하니, 일단 좋은 대학 들어가고 미술은 취미로 하란다.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면 이렇게 말했다.

   “정말 힘들었던 건요, 제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부모님도, 일단 대학부터 들어가라고 하고, 친구들도 저를 이상하게 보고, 상담소도 없잖아요. 학교 상담이라는 게 그냥 성적 상담하는 거지, 그게 무슨 진로 상담인가요? 시간이 갈수록 막막해지면서 계속 그곳에 있다가는 진짜 죽을 것 같았어요. 미술을 어떻게 취미로 해요?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그건데, 그걸 어떻게 취미로 해요?”

   그녀는 결국 외국어고를 자퇴하기로 결심했다. 집안은 거의 재난 수준이 되었단다. 말리다 지친 아버지는 딸과 아예 말을 끊었고, 엄마는 딸을 붙들고 매일 울었다. 그래도 그녀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자퇴를 강행했고, 아버지는 그 뒤 1년 넘도록 딸과 얘기하지 않았다.

   “집에 있기도 힘들고, 미술 실기도 많이 뒤졌고 해서, 미술학원 옆에 자취방을 구하러 다녔어요. 작은 셋방들을 보러 다니는데, 한 집에서 그만 엄마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어요. 근데 엄마가 거기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 둘이서 붙들고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몰라요.”

   부모를 거역해야 했던 그녀 역시 몹시 아팠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났다.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라스베이거스 여행 동행자를 찾던 중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온 이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가 지금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다. 같은 과 친구들 중에는 자기보다 더 극심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 단식 등으로 투쟁한 끝에 미대 진학이라는 꿈을 이룬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종종 그런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만약 좀 더 일찍 미술을 하겠다는 꿈을 키웠더라면, 그래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미술관도 다니고 미술 탐방 프로그램도 참가하고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20년을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것에 매달리느라고 시간을 허비했을까?

글출처 :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박에스더,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