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표현하는 더 좋은 측량법이 있다.

'지하철에서 걸어서 10분' 좋아하는 음악을 딱 세 곡 들을 정도의 거리' , '이별의 아픔' 대신 '세 시간의 눈물, 이틀의 금식, 사흘의 불면 혹은 한 달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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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 간 집은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이어폰을 끼고 3분에서 4분 남짓한 노래 세 곡쯤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이르게 된다. '지하철역에서 10분 거리'보다 '좋아하는 음악 세 곡 들을 정도의 거리'라고 표현하니 그 측량법이 훨씬 정겹다.

 

아이의 키는 1미터가 아니라 내 갈비뼈가 시작되는 곳.

시험공부 범위는 일곱 시간 자면 불가능, 네 시간 자면 가능.

체중은 희망 수치보다 5킬로 추가한 숫자.

월급은 만족스러움과 쓸씀함 사이.

 

그리움의 눈금은 이따금, 자주, 나오 모르게,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한.

내 사람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언제나 한 눈금 더.

이별의 측량법은 세 시간의 눈물, 이틀의 금식, 사흘의 불면, 한 달의 우울, 혹은 영원한 침묵.

측량법을 바꾸어보니 삶의 모든 것이 애틋해진다.

 

 

글 출처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샘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