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30년간 몸을 담았던  직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사표를 낸 이유는  아내가 기억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 ...


아내가  나를 잃어가는 병인 치매에 걸린 것 같다며
남편은 새벽녘 댓바람부터  하얀 담배연기를 뱉어놓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알면  당장 요양병원에 데려다주려고 할 텐데... “


나고 자란 이곳에  일 년에 한 번 지애미 아비 생일 때나


“통장으로 돈 보냈어요 “
“바빠서 이번 명절엔 못 내려가요”


라는 서열 없는 말들만  던져놓는 자식들 앞에  가진 것 없는 노인이 된 부부는
말을.잃은지 오래랍니다


굵게 패인 주름길 따라  휜서리 머리에 이고  아내는  남편 다리를 베고 지금 잠들어 있습니다


 침묵이 버린 말을 찾는 남편의 눈에  아내의 주름은 밥이 되고
희어진 머리는 남편의 술 한잔이 되었을까요.


“여보!  긴 세월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소 “


언제까지 이 손을 잡고 있을런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면서
남편은 아내의 부재가 줄 외로움을  먼저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잠든 새벽녘 눈을 떠니  아내의 자리가 비워 있습니다.
남편은 방마다 헤매다 마당에 있는 흔들의자에  이슬처럼 매달려
한숨을 뱉어놓고 있는 아내를 보았습니다.

 
조용히 다가선 남편의 눈에  아내의 눈물이 먼저 와 반기고 있습니다.


“내가 있잖아.. “

남편의 사랑이 저 달이 된 걸까요?
아내는 비친 눈물을 보이기 싫어  돌아누운 저 달만 올려다봅니다.

“처음 만나 저 달을 보면서  당신에게 맹세 했잖아  죽는 날까지 당신곁을 지켜줄 거라고...“


“여보 아이들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그리고...
......
......
날 버리지 말아요 “


아내의 말이 남편의 폐부를 파고 들어옵니다.


오늘은 마치 부드러운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놓은 아내.

“여보 식사하세요”
“어... 그.... 래요”


낮달을 올려다본 것 같은 표정을 매달고선  남편은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멀찍이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내,  하지만 남편 눈엔 텔레비전이 아내를 보고 있습니다.


 그때 울리는 전화
“요즘 엄마는 왜 전화 안 받으세요 “

“밭과 들로 일한다고 바빠서 그렇지“


입은 있지만 할 말이 없었어일까요.
낡은 관절이 삐거덕 거리는 대답들만 늘어놓고선
얼렁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


햇살 비치는 어느 봄날,
그래도  희망을 안은 채 하루를 보내던 아내가
이제는 소금과 설탕을 구분을 못합니다.


 설것이 한 그릇을 냉장고에 넣어 두기도 하구요.


“누구세요 “

“누구긴 당신 남편이지..”

“아냐 우리 남편은 이리 늙지 않았어  흰머리 난 영감이 아니란 말이야 “


이제는  자신의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
하지만  아내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나 봅니다.


“당신 남편 이름이 뭐야”

“남상현“


아내는 흘린 눈물길 따라  되돌아오는 법을 알아가는 걸까요.
남편은 "남상현"이란 이름에  그만 날개 없이  저 허공을 가르는 종이달처럼
울음부터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나를 이어주는 이음줄이  사랑이었다면
그 사랑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한결같은 마음이었기에
치매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눈부신 날이 계속될 텐데...


돌아누운 저 달이 말해서일까요....
허공을 받치고 선 저 바람이 전해서 일까요......


병원에 데려가자며 찾아온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난 내가 선택한 삶을 지키며 살겠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자유다.... “라고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간 길 따라 등 굽은 달 옆에 힘 빠진 별처럼
남편은 아내의 휠체어를 밀며  잠이 들고 잠이 깬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고.


평생을 남편을 위해 헌신했던  아내는 마지막 시간을 지켜준 남편에게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웠다고..’


남편의 마음을 느끼고 세상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몽돌이 되기까지  아내가 보내어준 숨결 따라
사랑할 때 알아야 하는 것들을 되뇌어 보면서  남편은 아내가 한 번이라도
나를 기억해 준다면  꼭 이 말 한마디는 해주고 싶었다 말합니다.


“죽었어도 내가 섬길 사랑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