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트럼펫이다. 트럼펫 소리처럼 헛헛한 것들을 가슴에 몇 만 그루 심어 놓은 사람. 시베리아 벌판을 품고 사는 사람. 우리로서는 그 외로움을 측량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존재.

 

 

   아버지는 헛기침하는 사람이다. 초인종을 누르기 쑥스러워 헛기침을 하시는 아버지. 기침이지만 동시에 기침이 아닌 헛기침이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트럼펫이다. 트럼펫 소리처럼 헛헛한 것들을 가슴에 몇 만 그루 심어놓은 사람. 시베리아 벌판을 품고 사는 사람. 우리로서는 그 외로움을 측량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존재.

 

   아버지는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 수많은 사진을 찍어주었으나 막상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람처럼 알뜰하지 않아서 '사람하지도 않았으면서' 하고 오해를 받아도 허허 웃고 마는 아버지. 그 수많은 사질들이 모두 아버지가 셔터를 눌러주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만드는 존재. 그래도 불평 한 마디 없는 사람.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드러나지 않는 방법만 골라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 우리를 위해 몇 번의 굴욕도 꿀꺽 삼킨 사람. 서툰 사랑을 운명처럼 여기는 그런 존재.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 우리를 후횔 사무치게 만들고야 마는 서툰 당신.

 

 

글 출처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마음 사전, 샘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