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름, 한평생을 교육에 바친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의 정년퇴임식에 갔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이루어지는 조회를 지루해하듯 선생님들의 정년퇴임식 또한 학생들에게는 지루한 행사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모교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정년퇴임식은 참 많이 달랐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분은 교감 선생님이셨습니다. 제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신문 <숙란>의 지도 선생님이셨습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사고가 젊으신 선생님, 함께 영화 이야기를 하면 젊은 우리보다 더 젊은 시각으로 영화를 이야기하시는 선생님,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전시회에 가고 더 많은 음악을 듣는 선생님, 제게는 평생 사표로 삼을 만한 진정한 스승이셨습니다.

 

   정년퇴임을 하는 선생님은 교감이라는 직책을 가졌기 때문에 직접 학생들을 가르칠 일도 없고, 학생들과 부딪칠 일도 별로 없으셨으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출석했으리라는 짐작도 했습니다.

 

  그런데 퇴임식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 “교감 선생님의 고별사가 있겠습니다.”라는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안 돼요, 가지 마세요!” 하고 외쳤습니다.

 

   참석한 선생님들도, 동창생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환갑이 지난 교감 선생님을, 그것도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담임의 인연도 없는 선생님을 학생들이 붙잡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자긍심을 가질 것, 감사를 잊지 말 것을 당부하는 고별사가 끝나자 학생들의 송별사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달려와 그 짐을 함께 들어주시던 교감 선생님을 기억했고, 학교 수업이 교실이나 수업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했고, 환갑이 넘은 연세여도 늘 젊은 학생들에 뒤지지 않는 문화적 감각을 지니신 선생님께 감동의 마음을 전했고, 성우보다 멋진 선생님의 목소리와 청년처럼 수줍음이 남는 선생님의 ‘살인 미소’를 추억했습니다.

 

   환갑을 넘긴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자리에서 ‘살인 미소’라는 유행어를 쓸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말이 모두에게 따뜻하게 통용되는 것도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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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은 남다른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학생들을 읽고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비결을 아는 남다른 능력을 갖추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짐작이 아니라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우리 제자들이 선생님을 챙겨드린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늘 우리를 챙겨주셨으니까요.

 

   선생님의 그 남다른 능력은 ‘노력’이었다는 걸 잠시 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곁에 있던 후배들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3일 때 선생님이 저희 담임이셨는데, 졸업하는 저희에게 일일이 카드를 만들어 축하의 말을 써주셨어요.”

 

   “저희가 무거운 짐을 들고 등교하면 교감 선생님은 교문에 계시다가 저희의 짐을 들어주셨어요.”

 

   저는 그날 제 생각을 정정했습니다. 한 가지 알을 오래 한 사람들은 그저 쌓인 세월만으로 남다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월 동안 노력한 만큼 남다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정년퇴임이 보기 드문 요즘, 그날의 정년퇴임식은 ‘오래’라는 단어가 오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자리였습니다.

 

   숙명여자고등학교의 교감 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셨고, 지금은 ‘숙명 100년사’라는 학교사를 만들고 계신 한진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글 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