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에 의자를 사러 가지 말 것. 어느 의자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느껴질 테니. 이별 뒤에 성급하게 다시 연애를 시작하지 말 것. 필요에 의한 사랑을 운명적 사랑이라 혼동하기 쉬우니.

 

 

   이별한 여자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장롱을 뒤집거나, 방을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꾸며 슬픔을 다스리곤 한다.  며칠 전, 업무가 끝난 뒤 그녀는 지하철로 두 정류장 떨어져 있는 가구거리를 찾아 갔다. 주말에 대대적인 방 정리를 하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다. 방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면 자신의 마음도 바뀔 것 같았다. 

 

   끈질긴 연애의 기억을 지우듯 산뜻하고 패셔너블한 플라스틱 의자에 마음이 꽂힌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는데도 의자는 너무나 편안했다. 신기해서 몇 번 더 앉아보았는데 역시 편안했다. 더 볼 것 없이 그는 그 의자를 선택했다.

 

   

   의자가 배달되었다. 화사한 색감이 봄날처럼 산뜻해서 방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그녀가 앉아보았던 그 의자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딱딱하고 불편했다. 그녀는 뒤늦게 알았다. 의자를 사러 갔던 그날, 그녀가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다는 것을. 세상 어떤 의자에 앉았더라도 편안하게 느껴졌으리라는 것을.

 

 

   문득 그녀는 자신의 연애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연애도 해 질 무렵에 산 의자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진정 그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외로울 때 그가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의자를 방구석에 하나의 오브제처럼 놓아두었다. 앞으로도 혹 '해 질 무렵에 의자를 사려 할 때', 나쁜 선택에 유혹을 느낄 때 일종의 경고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글 출처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마음 사전, 샘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