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하는 날이라고 특별한 행사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요 며칠 아는 사람들과 연달아 저녁을 먹은 것이 나름의 정년퇴임식 같은 것이었죠.   

그와 함께 입사했던 사람 중에 함께 정년을 맞이한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모두 중간에 어디론가 이직을 했거나 혹은 원치 않은 퇴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 있었던 것이 다행인 것도 같고, 떠난 사람들이 능력자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도 몇 번의 퇴직 위기를 넘기면서 이 먼 지방의 현장까지 흘러왔고, 그렇게 이곳에서 직장인으로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요.   

언제나 맛있는 커피를 타주던 후배가 건넨 커피 한 잔을 마지막으로 마시고 그는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를 따라나서던 사람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아내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주름살도 꽃처럼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면서 아내가 거기 있었습니다.   

멋지다, 부럽다, 로맨틱하다, 뒤에서 직원들이 하는 말이 그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퇴직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의 축하를 받으며 퇴직하는 꿈은 그려봤어도 가족의 환영을 받는 퇴직은 그려보지 못했던 그는 아내가 건네주는 꽃다발을 고맙게 받았습니다.   

국도로 접어들기 전 신호등 앞에 잠시 멈췄을 때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고마워.”

그 말 속에는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이곳을
용케 찾아온 것이 고맙다는 마음도,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마음도, 
꽃다발을 전해줘서 고맙다는 마음도 다 들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가 일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준 고마움이 가장 컸습니다. 


함께 24시간을 보내야 할 앞날이, 변변한 노후 준비도 없이 맞이해야 할 날들이 만만치는 않겠지요. 그 어떤 노후 준비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는 걸, 뭐든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마음이라는 걸 그는 그렇게 “고맙다”는 말 속에 담았습니다. 아내가 그 말을 다이아몬드 같은 약속으로 받아주기를 바라면서…….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