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노을이 불현듯 심장을 쿵 내려앉게 하고, 구름이 심상찮은 저녁이 옵니다. 그런 때면 오래전에 보았던 <파리 텍사스>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영화 <파리 텍사스>는 문명을 거부하는 삶을 택한 남자 트레비스가 그를 떠난 아내와 아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조명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파리 텍사스’인 것은 사막 같은 텍사스주의 ‘파리’라는 지명이 꿈과는 동떨어진 현실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삭막하고도 쓸쓸한 삶을 제목이 무척이나 잘 표현하고 있지요. 트레비스는 LA에 있는 동생 월트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게 됩니다. 휘황한 도시의 삶에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트레비스는 늘 우울한 표정입니다.

   어느 날 트레비스는 동생 가족들의 구두를 신발장에서 꺼내 하나씩 닦아 줍니다. 깨끗하게 닦아 담장에 올려놓은 구두 몇 켤레. 트레비스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었습니다. 문명에 적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남자의 뭉클한 사랑법이었지요.

   세상에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많습니다. 장마철에 가방 속에서 나오는 한 켤레의 양말에서, 도시락에 콩으로 새긴 글자에서, 매일 아침 좋은 글을 담은 메일을 보내주는 친구의 정성에서, 이따금 “별일 없지?” 하고 걸려 오는 사려 깊은 안부 전화에서 사랑을 발견합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서 간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구두를 닦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글출처 : 오늘의 오프닝(김미라, paper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