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 몇 년 끊임없이 뭔가를 했던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쓰는 일과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제법 나이가 들던 언젠가부터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불꽃같이 살다가 번개처럼 가자’는 결심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와중에 이틀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것은 드문 일이다. 좋아하는 하모니카야 반사적으로 한 번씩 부는 거니 거기엔 아무런 의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냥 이 방 저 방 곳곳에 하모니카를 놓아두고 눈에 띄면 군것질하듯 입으로 가져갔을 뿐 그것을 했다 해서 뭔가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림 또한 터져 나오듯, 쏟아져 나오듯 그렸다. 손 가는 대로 붓 또한 정신없이 따라가며 그려댄 것이다. 그것도 마치 하모니카 불 듯 뚜렷한 의식이 없는 상태로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붓을 들면 터져 나오고, 글자판 위에 손을 얹으면 깊은 산중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져 나오던 것들이 중단되었으니 심심하거나, 무료하거나, 아니면 허무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정상일지 모른다. 창밖의 백일홍은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지 진분홍으로 난리고, 석축 아래 나무수국은 고요한 듯 흐드러진데, 오늘 같은 날은 어느새 산(山) 냄새도 다르다. 계절이 바뀔 때가 되어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나는 오래 안 보던 사람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멀리 간 아이에게 카톡을 하며,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살다가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잠시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도(道)이다. 도 닦는다고 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여여하게 사는 것’이 진짜 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마음 편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도가 추구하는 일이니 도 닦은 것은 마음이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는 일이다.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이런저런 궁리에 빠지고, 자책하는 등 마음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설령 그것이 도가 아니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면 어때. 살 만큼 살았다, 병상에 누운 채 가시지 못하고 있는 노모를 매일 보며 ‘얼른 헌 옷 벗으소서. 몸뚱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어서어서 가소서’ 하며 기원하던 나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나’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 몸뚱이가 사라지고 나면 정말 자유로워질까? 몸뚱이 없는 ‘나’를 상상해본 적은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몸을 ‘나’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몸이 사라지면 내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몸 때문에 겪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많은 벽이 몸 때문에 곳곳에 겹겹이 층층이 세워져 있는가. 가족이나 자신이 아파보면 안다. 몸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나무수국 아래 저절로 자란 깻잎 몇 장 뜯어본다. 걸어 다닐 수 있던 시절 어머니가 좋아하던 깻잎이다. 벌레가 먹었는지 구멍이 듬성듬성한 깻잎을 보며 구멍 듬성듬성한 내 인생을 돌아본다. 누군가가 말했다. 극적인 인생이었다고. 그리고 또 누군가가 말했다. 노매드였다고. 깻잎의 향기를 코로 들이마시며 내가 하는 호흡에다 대고 주문을 건다. 들이마시는 숨에 들이마심, 내쉬는 숨에 내쉼, 하고 이름을 붙이며 호흡에 집중한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호흡에 집중한다는 말을 곧 명상을 시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명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이론과 설을 갖다 붙이지만, 명상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명상이란 초능력이 생기는 뭔가도 아니며 사람이 달라지는 혁명 같은 것도 아니다. 명상을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가? 그것의 궁극은 마치 그림이나 시와 같아서 가르쳐주려 해도 가르쳐줄 수가 없으며 배우려 해도 배울 수가 없다. 명상은 그냥 살아 있는 것을 느끼고 깨닫는 것이며 혼자 왔다가 혼자 가듯이 혼자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지 아닌지를 누구에게 묻고, 숨 쉬는 것을 누구에게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명상이란 그냥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여여하게 지금, 여기 현존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고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물을 것도 없고, 가르쳐줄 것도 없이 그냥 물을 마실 때 물을, 바람을 만날 때 바람을,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 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깻잎 한 장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글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