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태우고 공항으로 가는 차 안, 아내는 신이 난 표정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여행을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좋아?”

   그가 묻자 아내는 다 알면서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아들과 딸도 표정이 밝았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주고, 여행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시골에서 너무나 단조롭게 큰 아내가 아이들 인생에 주고 싶은 선물이기도 했죠.

   공부하라고 야단을 치지도 않았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학원 공부를 시키느니 차라리 여행의 꿈을 키워주겠다고, 학원비는 아이들을 위한 적금에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고집 센 아내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지켜냈죠.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도 아내는 이 적금만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연년생 두 아이가 모두 대학에 진학한 뒤, 그녀는 드디어 적금을 찾았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아들만 보내면 어떠냐고 말하자 아내는 버럭 화를 냈죠. 아들에게 기회를 주면 딸에게도 같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마치 아내 자신이 차별받기라도 한 것처럼 발끈했습니다.

   무심코 한 말에 이런 반응이 따라오니 좀 서운하긴 했지만, 그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아내의 서러운 역사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자신들이 벌고 저축한 돈까지 얹어 제법 긴 여행을 준비한 아이들이 “잘 다녀올게요”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행하다가 정말 행복한 순간에 엄마한테 전화해줄래?

   아이들이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당부 하나 얹어주는 아내. 아내의 말에 담긴 진심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즐거운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서 여행 중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장모님이나 언니나 친구에게 전화하도록 만들어주는 꿈.

   아마도 올해엔 힘들겠지만, 내년에는 꼭 아내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