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6개월 만에 첫 외출을 하는 그녀.

   오랜만의 외출이라 약속 시각보다 일찍 서둘렀습니다. 2층 창가에 앉아 커피를 한 잔 앞에 두고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인가 하며, 그 시간을 알뜰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숨길 수 없는 봄빛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죠.

   창밖을 다시 내다보던 그녀는 이상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아까부터 마치 똑같은 필름이 반복되듯이, 레코드가 튀어서 제자리를 맴돌 듯이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횡단보도 앞에 선 한 소년.

   소년은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횡단보도로 한 방을 내밀다가 다시 주저하며 되돌아오고, 그러기를 세 차례나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걸음이 불편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길에 대한 공포심이 소년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길 건너편에서는 한 여인이 꼼짝 않고 소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엄마라고 짐작되는 여인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지도 않고, 그걸 못하느냐고 다그치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죠.

   봄빛이 완연하다고 해도 아직은 추운 봄날. 길을 사이에 두고 선 소년과 엄마는 마치 태평양을 사이에 둔 사람처럼 멀고 안타까웠습니다.

   신호등이 다섯 번째 바뀌었을 때, 소년이 마침내 횡단보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달려 내려가 소년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녀 역시 소년의 엄마가 된 듯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자 건너편의 엄마가 굳었던 자세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횡단보도 중간의 안전지대에서 멈춰버리고 말았죠.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중간에 멈춰선 소년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건너편에서 소년을 지켜보는 엄마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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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초록 불이 켜졌을 때 소년은 엄마를 향해 마치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가 안겼습니다. 다음 신호등이 들어올 때까지도 두 사람은 포옹을 풀지 않았습니다.

   길을 건너는 것이 그런 일이었던가. 그녀는 길 건너편의 엄마와 아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굳게 손잡고 걸어가기 시작한 엄마와 아들을 보면서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냈습니다. 혹시라도 그녀의 아들이 자라서 세상을 건너가는 일을 힘겨워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도 저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사랑이란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며
때론 비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사랑은 그저 상처를 덮는 붕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