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나이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나이 마흔이면 대체로 꿈을 접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 마흔에 박완서 선생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헤르만 헤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배우 지나롤로 브리지다는 은퇴를 한 후 50대 중반에 사진 공부를 시작해 훌륭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마흔의 나이를 넘기고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40대’들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마흔 살의 후배가 정원에 관한 공부를 하러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후배를 말렸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도 벅찬 나이에 집을 팔아서 유학을 간다니 말이 되느냐, 정신 차려라, 하고 말이지요. 집을 팔아서 공부하러 떠나는 후배도 왜 갈등하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후배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라고 생각해. 아이들에게도 집을 물려주는 것보다는 경험과 안목을 물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나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먼 훗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내가 몇 평짜리 집에서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경험을 하며 살았는가, 얼마나 내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며 살았는가, 그런 것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

   후배의 열정과 꿈은 자주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겠지만, 저는 그 후배의 용기와 결단이 부러웠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는 후배.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진 후배에게 축복의 인사를 보냅니다.


   꿈은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그 가혹함을 견디고 끝끝내 자신의 꿈에 충실한 사람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글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