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가슴속에서 종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첨탑의 종지기가 줄을 당기듯 내 가슴속에 숨어 있는 누군가가 줄을 당겨 땡그랑땡그랑, 종을 칠 때가 있습니다.

  종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펑펑 울고 맙니다. 눈물이 주는 치유력에 힘입어 다시 소생할 무렵, 종소리는 지워지듯 사라지고 맙니다.
한번씩 어릴 적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건 꼭 꿈인 것은 아닙니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던 눈부신 그 영상은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어린 시절의 아픔일지도 모릅니다. 색색의 꽃가루로 떨어져 내리던 아릿하고따뜻한 어린 날의 기억들.

   몹시 외로울 때, 아니면 어딘가에 매달리고 싶을 만큼 힘겨운 순간, 어린 날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산위에 걸려 있던 밤이 발걸음 소리 죽여 문지방 넘어오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꿈나라로 가는 동안, 은빛 비처럼 반짝이던 영상과 만나기 위해 팔 베고 가만히 누워 잠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엄마와 이모처럼 보이는 여자들 사이에 끼어 소리내어 흑흑 흐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서너 살, 또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은 작은 가방 하나씩을 메고 있었습니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또 다른 흐느낌 하나가 아이들 울음에 섞여 날아옵니다. 점점 커지고 있는 흐느낌의 주인은 엄마인 듯한, 좀더 나이 등 여자입니다.왠지 가슴이 짠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그들을 스쳐 입구 쪽으로 갑니다.

  성수기의 공항은 몹시 붐비고 있습니다. 노랑머리의 외국인들과 검은머리의 내국인들이 섞인 국제공항은 마치 인종 전시장 같습니다. 하얀 피부, 노란 피부, 검은 피부에다 머리까지 염색해 갖가지 색깔을 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습니다. 출국심사대 쪽으로 걸어 가는 동안 나는 울고있던 아이들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다시 그들을 만난 건 비행기 안에서였습니다. 뜻밖에 그들이 내 옆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이모라고 추측했던 젊은 여자는 이모가 아니라 엄마였던 모양입니다. 흐느끼던 여자는 간 곳 없고, 그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남맨가 보죠?"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 건 잠에 곯아 떨어진 사내아이가 내 무릎 위로 발을 뻗어왔기 때문입니다.

  "예, 맞아요."
  "사이좋은 남매를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나네요."

  항공기 좌석의 그 좁은 공간에 끼어 자면서도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들, 왠지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누나가 꽤나 똘똘하게 보이던데요. 울면서도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더라고요."

  스치듯 봤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두 여자 사이에 끼어 훌쩍거리면서도 여자아이는 연신 동생의 뺨을 손으로 닦아주곤 했습니다.

  "몇 살 차이인데, 그렇게 동생을 챙기나요?"
  "연년생이에요."
  "착하기도 해라."

  다시 한 번 나는 아이들을 살펴봅니다. 아직도 눈물 흔적을 달고 있는 사내아이는 꿈이라도 꾸는지 이마를 찡긋찡긋 찌푸리고 있고, 행여나 놓칠세라 동생의 손을 잡고 있는 누나는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의 한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재가한 엄마가 그리워 엄마 집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가슴 아픈 기억들.

  잠든 아이들 위로 어릴 적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 나 또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봅니다. 혹시 그 시절의 영상이 떠오를까, 기대하며......
어릴 적, 한 이불 속에서 동생과 나는 눈만 감으면 나타나는 영상에 홀려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천장 위론 쥐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은 날은 다리가 인어공주처럼 지느러미로 변하는 상상에 잠 못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때 눈을 감으면 나탄던 눈부신 그 영상들은 왜 다시 떠오르지 않는 걸까?

  잠깐씩 잠에 빠졌다간 깨어나고,잠에 빠졌다간 깨어나기를 수없이 거듭하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서로를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늦게 나온 짐을 밀고 바쁘게 걷던 내가 다시 그들을 떠올린 건 출구가 가까워졌을 때입니다. 작별인사라도 할 양 두리번거리는 순간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나! 누나!"
  "형규야, 형규야!"

  애타게 서로를 부르는 남매의 소리. 깜짝 놀라 나는 출구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가까워지는 순간 그 소리는 어느새 절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분주한 여행객들 앞으로 쏟아지는 아이들의 비명 같은 절규. 얼른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습니다. 서로를 부르면 울부짖는 아이들의 소리만 사방으로 부딪힐 뿐 애 엄마는 저만치서 넋을 잃고 있을 뿐입니다.

  "도데체 무슨 일이에요?"

  양쪽에서 한 아이씩, 몸부림치는 남매를 붙잡은 채 쩔쩔 매는 미국인들을 보는 순간 나는 밀고 나오던 짐도 내버려 둔 채 여자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그래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서 있던 여자가 울음을 터뜨린 건 그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왜요? 왜? 아이들이 어쨌다고?"
  "갈라져야 해요, 아이들이, 서로 찢어져야 해요."
  "무슨 말이에요? 찢어지다니, 도대체 뭐가?"
  "입양되기 위해 온 거예요. 쟤들은, 입양되기 위해 여기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아버리는 여자, 그 순간, 인천공항에서의 정경이 떠올랐습니다. 왠지 가슴을 짠하게 하던 그때 정경이 지금 상황 위로 겹쳐집니다.

  "엄마 아니었나요? 아이들 엄마 아닌가요?"

  갑작스런 소동에 휩쓸려 나도 어느새 다드치듯 고함을 지릅니다.

  "아니에요. 쟤들한테 엄마가 어딨어요."
  "그럼, 저 사람들은? 아이들을 잡고 있는 저 사람들은?"
  "양부모예요. 미국인 양부모들이 마중 나온 거예요."

  그러고 보니 누군가 아이들 이름이 적힌 피켓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본 것도 같습니다. 바닥에 나뒹굴로 있는 피켓과 놀란 듯 쳐다보는 눈동자들, 양부모에게 붙잡힌 채 남매는 서로를 부르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안 돼, 안 돼! 누나야, 누나!"
  "형규야, 형규야……."

  벌어지는 간격을 좁히려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칩니다. 안았다간 놓치고, 안았다간 놓치기를 되풀이하며 쩔쩔매는 양부모들, 그러나 점점 더 남매는 멀어질 뿐입니다.

  "그럼, 저건 왜? 아이들을 왜 저렇게 갈라놓는 거예요?"
  "헤어져야 해요. 서로 다른 곳으로 찢어져서 입양되는 거예요."
  "다른 쪽으로? 아니, 남매가 헤어진단 말인가요?"

  정신이 아득해져왔습니다. 헤어진다니, 저 어린것들이 이국만리인 여기까지 와서 서로 다른 곳으로 입양된다니. 동생 쪽으로도, 누나 쪽으로도 쫓아가지 못하고 나는 엉거주춤 서 있기만 할 뿐입니다. 흐느끼는 여자와 뒹굴고 있는 피켓, 울부짖는 남매를 들쳐 안은 양부모는 이제 멀리 회랑의 양끝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누나는 여기에, 사내아인 국내선을 타고 더, 더......"
  "그럴 수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눈썹을 적시며 고여오는 물기 때문에 나는 그만 눈을 감고 맙니다. 손잡고 자던 남매의 모습이 커다란 화면처럼 눈앞을 가로막고, 멀어지는 울름소리가 전류처럼 온몸을 휘감고 지나갑니다. 스르르 벽에 기대어 주저앉는 순간, 쨍! 귀청을 찢어놓는 고함소리에 나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신발이에요, 신발! 형규 신발!"

  벗겨져 뒹굴고 있는 신발 한 짝.

  "이거 신고 가! 형규야, 이거 신어야 돼!"

  미친 듯 신발을 주워든 여자가 아이를 찾아 달리기 시작합니다. 모퉁이를 돌아간 아이는 이미 보이지 않고, 동생을 부르는 누나의 절규만 반대쪽 회랑을 돌아오고 있습니다.
넋을 잃고 나는 달려가는 여자를 쳐다볼 뿐입니다. 팽개친 짐과 지나가는 이방인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꺼내든 채 대책없이 앉아 있을 뿐입니다.

  땡그랑땡그랑......

  종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습니다. 누군가 내 가슴에 매달려 종을 치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나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봅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아이들 울음소리......

  언젠가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꽃들이 눈물 속에 한 방울씩 싹을 틔우고 낯선 엄마, 아빠 품에 안긴 아이들도 이윽고 울음을 그칩니다.
손톱보다 작던 싹이 자라 줄기가 되고, 예쁜 잎이 돋아 커다란 나무가 됩닏. 나무에는 나무마다 나무의 요정이 살고 있습니다. 꽃눈에는 또 꽃눈마다 꽃눈의 요정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요정을 꿈이라고 부릅니다.

  내 어릴 적 꿈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헤어졌던 남매가 엄마와 만나는, 꿈 같은 꿈 이야기......
언제라도 눈만 감으면 떠오르던 무지개 같은 그 여앙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밤새 천장 위로 새앙쥐가 달려가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기 위해 방마다 물그릇 받쳐두던 가난했던 날들의 따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땡그랑땡그랑...... 누군가의 가슴에 매달려 종을 치고 싶은 날, 어린 시절 잃어버렷던 신발 한 짝을 찾아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글 출처 : 엄마냄새(김재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