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으려고 쥐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채우려면 채워진 것을 비워야 한다.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은 반대의 일이다.
반대로 가라.


   뭔가 삶에서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과 다른 방향을 향해 삶을 살아보라는 가르침은 경청할 만하다. 이를테면 그 말은, 세속의 가치를 강하게 붙들고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반대쪽 길을 걸어보라는 말이다. 뭔가에 집착해 있었다면 그 집착을 놓아버리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며 살았다면 더 이상 그 사람 비위를 맞추려 하지 말고, 열등감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책하고 있다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쪽으로 삶을 바꾸어보라는 말이다.

   돈 버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살았다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 봉사도 하며 그렇게 살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은 반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바로 가는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좀체 그렇게 반대쪽을 향해 유턴하지를 못한다. 유턴하기엔 너무 늦었다거나 유턴하기엔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유턴을 불법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로 하는 유턴에는 불법이 있겠지만, 인생의 유턴엔 그런 것이 없다. 단지 유턴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을 뿐. 그러나 그것은 운전 기술에 의해서 할 수 있는 유턴이 아니라 각성과 용기로 시도하는 극적인 방향 전환이다.

   습관적이고 무기력하게 살던 삶을 바꿔놓는 유턴은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 실행된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을 바꿔놓는 커다란 각성은 깨달음과 비슷해서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듯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잇던 어둠을 일시에 사라지게 만든다. 이제껏 ‘나’라고 믿어왔던 ‘나’가 일시에 무너지고,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더 큰 ‘나’가 깨어나 지금까지의 작은 나를 밀어낸다.

   그 큰 ‘나’는 협소한 분별에 사로잡힌 ‘나’가 아니고, 우주와 닿아 있는 ‘나’다. 높은 자아라고 불리는 그 ‘나’와 만나는 순간 우리는 지금까지의 방향과 반대로 유턴을 시도한다.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나인 그런 경지. 살아가면서 더러는 그런 경험과 정면으로 만날 때가 있으니 그때가 바로 가던 길을 유턴해 반대쪽을 향할 때다.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