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사람이 만든 법망은 촘촘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는 듯합니다. 반면에 하늘의 그물은 성겨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법망은 이리저리 피해 나갈 수 있고, 하늘의 그물은 애써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하늘의 그물이 싸우지 않고도 이기며 부르지 않는데 오는 무위의 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말 이틀 동안을 꼬빡 인부 두 명과 함께 나무를 심었습니다. 삼죽에 사는 소설가 정연희 선생 댁에서 간벌하며 캐낸 나무를 가져가라기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삼죽으로 건너갔습니다. 단풍나무 여덟 그루, 산벚나무 다섯 그루, 반송 두 그루를 캐서 작은 트럭에 실으니 꽉 찼습니다. 인부 두 명이 달라붙어 그 나무들 캐는 데 하루 걸리고, 이튿날 심는 데 반나절이 걸렸지요.

 

 

  대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양 켠에 나무들을 심으니 집이 달라 보입니다. 나머지 반나절엔 집 주변의 풀들을 자르고, 금광호수 쪽에 서 있는 감나무와 뽕나무는 베어 냈습니다. 이태 전에 뿌리가 얼었던 탓인지 많은 가지들이 죽어서 보기도 흉했던 것이지요.

 

  일요일에도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현관 앞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뽑느라 반나절 내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더니 허리께가 뻐근했지요. 나무는 공짜로 얻었으나 인부 두 사람 인건비 34만 원과 화물트럭 기사한테 준 5만 원을 합치니 대략40만 원이 깨진 셈이지요. 이렇게 4년째 나무를 사들이고 심는 데 들어간 돈이 제법이지요.

 

  나무를 옮겨 심고 난 뒤 호스를 연결해 파헤쳤던 땅이 착 가라앉게, 물이 흥건해 걸쭉한 반죽이 되도록 물을 주었습니다. 일찍 일을 마친 인부들이 돌아가고 저녁이 되어 푸르스름한 이내(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가 깔리고 그네의자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노랑어리연꽃과 부레옥잠이 들어 있는 돌확에는 며칠 전부터 개구리 한 마리가 터줏대감처럼 들어와 삽니다. 그놈과 함께 호젓한 저녁을 맞지요. 벌써 벼들 파릇한 논에서 개구리 떼 울고, 조금 더 어두워지자 반딧불이가 공중을 날아다녔지요.

 

  슈마허 등 여럿이 쓰고 골디언 벤던브뤼크가 엮은 <자발적 가난>이란 책을 며칠째 손에 들고 다닙니다. 공허한 풍요의 황폐함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는 자발적 가난을 살고 싶다고 하지만 일정 부분 내 몸은 이미 문명화의 편리와 단맛에 중독되어 잇지요. 슈마허는 말합니다. "필요를 확장시키고 키우는 것은 지혜를 죽이는 지름길이다." 정말 그런가요? 더 많이! 더 많이! 영혼의 절규를 내지르며 달려왔던 나는 대기에 푸른 저녁 이내가 가득 차 있는 이 시각 조용히 내 앞에 한 해의 수확물처럼 고스란히 쌓여 있는 가난에 대해 기뻐합니다. 삶이 그토록 왜소하게만 보였던 것은 내가 항상 무언가를 많이 가지려 애썼기 때문이지요.

 

 

  간디는 말합니다. "지구는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은 자원을 제공하지만 탐욕을 만족시킨 만큼 자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지금 내가 마음이 그득하도록 고요와 기쁨이 차오르는 것은 여기 내가 있기 때문이지요. 아직 가난은 얼마나 좋은가!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집과 의복과 음식을 단촐하게 하고 살고 싶습니다.

 

  오늘 낮에는 뱀 두 마리가 마당에 내려왔다가 사라졌지요. 으르릉거리는 포졸과 대치해 잇던 큰 유혈목이는 쇠스랑으로 몸통을 들어올려 둔덕으로 올려줬더니 천천히 사라졌습니다. 바로 마당으로 몸을 돌렸는데, 이번엔 그보다 작은 뱀 한 마리가 화단 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버립니다.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