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속에서 나는 장미를 본다.
장미 속에서 나는 쓰레기를 본다.
모든 것은 몸을 바꾸며 존재한다.
그러니 영원한 것마저 영원하지 않다.


   틱낫한 스님 글을 읽다가 눈에 띈 구절이다.

   지금은 쓰레기도 보이지만 형체를 바꾸어 장미로 피어날 수 있는 존재.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동안 인간이 거쳐 가는 변화를 뜻하는 말 같기도 하고, 구름이 비가 되고 그 비가 다시 강물이 되고 수증기가 되어, 다시 구름이 되는 순환의 과정을 뜻하는 말 같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함께 대화하고, 사람을 나누는 사람들 또한 순환과 변화의 과정에서 예외일 수 없다. 지금의 몸, 지금의 형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아름답던 얼굴도 주름살이 가고 허물어지며 예전의 미모를 유지할 수 없는 게 인간의 현실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현실이다.

   장미가 아름답다지만 시드는 순간 추하다. 매화와 난에 비해 장미는 시드는 순간 품격을 잃고 만다. 시드는 모습을 보라. 향기 은은하던 난과 매화는 시드는 그 순간,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라 이기적인 미모는 늙을수록 추해진다. 이기적인 미모란 내면의 평화가 없는 미모, 마음이 가꾸어지지 않은 외형만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아무리 미모가 뛰어나다 해도 빈정거리듯 웃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반면에 타인의 행운을 함께 기뻐하며 터뜨리는 파안대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젊은 시절 이기적인 미모를 뽐내던 여인일수록 노년으로 가면 추해진다. 얼굴에 생겨나는 주름을 설령 주사로 편다 해도 발톱을 감춘 고양이 같은 마음이 펴질 리가 없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시들어감이 아름답지 않은 건 세속의 먼지가 덕지덕지 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음도 가 같은 건 아니다. 초록이 늙어서 낙엽 되기 전 단풍의 깊은 아름다움을 보라.

   마치 쓰레기 속에서 장미를 보듯 우리는 주름살 가득한 노년의 허물어져가는 모습에서 한생을 살아온 인간의 아름다운 성공과 실패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성공과 성취를 같은 것으로 오해하진 말자. 성공하지 못한 실패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모든 성취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얻음으로 해서 추해지고,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추해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놓지 못해 추한데도 인간은 자꾸 더 쥐려고만 한다.

   늙음 또한 마찬가지라서 나이가 드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젊음만 쥐고 있으려 하면 추해진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보톡스를 맞고, 나이에 맞지 않게 꽉 낀 옷이나 짧은 치마를 입는다면 얼마나 추한가. 그 모습이.

   변화는 삶의 모습을 내치는 저항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쓰레기 속에서 장미를 찾아낼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며 자애다.

   ‘사랑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놓으며 기적이 일어나는 곳은 바로 우리 마음속’이라고 데이비드 해밀턴은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사랑의 빛이 우리 삶을 비추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긴 채 쓰레기 속에서 장미를 보고, 내 어머니의 주름살 속에서 삶의 굴곡을 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닦는 평화의 마음이 바로 자애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 어지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또한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 없이 어찌 자신에 대한 존중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빠진 자기 존중은 이기심일 뿐 평화로 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글출처 : 나의 치유는 너다(김재진, 쌤앤파커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