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가 되다. 만 감이 떨어진다. 부르지 않아도 찾아온 친절한 가을이 서랍을 열어 잊었던 시를 꺼내게 한다. 어디선가 보고 메모해둔 글이다. 




친절의 부드러운 힘을 배우기 전에 당신은

흰색 판초를 입은 인디언이 죽어서 누워 있는 

길을 여행해야 한다. 

그가 당신일 수 있음을, 그 역시 계획을 세워 

밤새 여행을 했고, 홀로 숨 쉬며 살던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 나오미 지하브 나이



   액자를 걸 듯 벽마다 창을 내어놓은 곳에서 지낸 적이 있다. 풍경은 액자 속 그람처럼 단풍을 담아, 보는 이를 황홀하게 했다. 액자 속 가을은 이제 절정을 지났다. 그러나 액자 밖에 있는 내 인생은 여전히 절정이다. 언젠가 흰색 판초를 입고 누운 인디언처럼 세상과 작별하는 날이 온다 해도 날마다 절정이라 생각하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절정이란 그것이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절정이란 '최고에 달한 상태나 경지'라고 되어 있는 사전의 해석을 봐도 최고인지 아닌지는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 단정 짓긴 힘들다. 마치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린 산맥을 오르듯 가장 높은 곳에 다다렀다고 생각하면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는 인생이라는 산행에선, 어디가 절정인지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절정이 지나간 것도 모른 채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며 산다. 아픈 몸이 낫기를 기다리고, 슬픈 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달성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길 기다린다. 하루살이처럼 매일매일 시간을 태우며 살지만 우리는 기다림이 있기에 생을 이겨낸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는 기다림 때문에 뜻하지 않은 실망 앞에 서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았으면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을 기대 때문에 스스로 실망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인생 후반기로 접어들면 어떠한 기다림도 갖지 않고 사는 것, 어떤 기대도 갖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기대한다는 것은 마음이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지 못하고 현재가 아닌 어딘가,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미리 가 있는 상태이다. 과거나 미래로 가 있는 마음은 불안정하다. 


   과거는 상처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미래는 근심과 걱정으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은 고토을 동반한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고통의 많은 부분은 소유와 연관된다. 소유하지 못하는 마음이 고통을 만드는 것이다. 


   고통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첫 번째 해야 할 것이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음을 어떻게 비운다는 말인가. 


   마음이란 형태나 무게가 아닌 일종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우리의 언어는 그것을 무겁다, 가볍다, 더럽다, 깨끗하다, 넓다, 좁다 등으로 표현하며 비우거나 채울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형태도 무게도 없는 그것을 쓰레기 버리듯 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맹목적인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운다는 말은 욕망과 집착에 의해 일어나는 생각을 멈추는 일이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바로 비우는 것이다. 생각한테 가는 에너지를 스스로의 의지로 끊어버리는 것이 바로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지금 어딘가에 마음이 묶여 있다면 그 마음을 놓는 것, 욕망과 집착을 바퀴 삼아 굴러가는 생각을 일시에 멈추는 것이 비우는 일이다. 뭔가를 채우기 바쁜 젊은 날을 지나 말년이 가까워지면 인생은 멈추고 버려야 하지만 말로는 비운다고 하면서도 비우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 말을 쓴다.


   실제로 세상 모든 일은 일 자체가 중요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건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중요도과 달라진다. 코로나19로 인해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나온 지인이 말했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2죽산을 수행과 정진의 기회로 삼았어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똑같은 환경과 조건을 겪고 나온 또 다른 지인이 말했다. "미칠 것같이 답답한 시간이었어요. 불안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욕구로부터 비켜나와 바라보면 마음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얻거나, 갖거나, 구하려는 욕구를 버리고 존재의 차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은 평화를 얻는다. 


   고요와 평화는 존재의 에너지이다. 인생 후반기에 필요한 것은 그런 고요와 평화의 에너지이다. 산 넘어 더 높은 산이 기다리듯 언제나 인생은 절정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러나 오래 살아 알만큼 아는 삶은 찬란하지만 이내 내려가야 하는 절정보다, 밋밋하더라도 고요한 일상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글 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어너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