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포기. 그것은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포기였다. 얼마 전까지도 사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일정한 월급, 일정한 출퇴근 시간, 일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직장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도전 끝에 참담한 실패를 맛본 뒤, 나는 깨끗이 구직을 포기했다. 현실적인 장벽과 함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간절히 물었다. 그런 뒤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취직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들만으로도 365일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곧 대학에서 일자리를 얻는 필수 요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드는 공부와 글쓰기였으니 학교 밖에서라도 그런 실천을 하면 된다.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자.

   이런 결론에 다다르고 나니 ‘왜 이 나이가 되도록 취직을 못 했을까’라는 자괴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취직보다 더 나다운 일, 구직보다 더 소중한 책임을 위해 1분 1초가 아까운 삶을 살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문제의 본질을 깨달으면 무엇을 포기할지는 저절로 드러난다.

   내가 직장을 포기하자 가장 힘들어한 사람은 정작 내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포기하자마자 나는 자유로웠지만,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내가 기울인 온갖 노력을 어머니는 나보다 더 아까워했다. 게다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나를 제대로 뒷바라지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온갖 비정규직 노동에 대해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는 왜 내가 취직하지 못한 것을 당신의 탓이라고 생각할까. 어머니는 여러 번 이런 말을 했다. “여울아, 그래도 너는 학위도 있는데, 그동안 그렇게 고생한 게 아깝지도 않냐.”

   고생은 했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공부를 통해 나는 더욱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됐다. 공부가 고생스러운 게 아니라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견뎌야 하는 온갖 아르바이트와 원치 않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 노동이 고생스러웠을 뿐이다. 어머니는 언젠가는 내가 꼭 교수가 되리라 믿으며, 그 기대와 희망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그런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내가 결단해야 했다.

   어머니는 얼마 전, 또다시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여울아, 취직은 완전히 포기한 거냐. 내가 뭐가 모자라서 이 고생을 한다냐. 네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까워서 어떤 다냐.”

   오장육부에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나는 더 미루지 않고 내 진심을 확고하게 말했다. “엄마, 그건 엄마가 원하는 거잖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교수가 아니야. 나는 그냥 글이 쓰고 싶어 작가로 사는 게 좋아. 꼭 교수가 되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잖아.”

   내 단호한 일갈에 어머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조금은 냉정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초대한 침착하게 설명했다. “엄마, 난 일곱 살 때부터 엄마한테 ‘사당오락’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어. 이제 엄마가 기대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너무 짧아. 이젠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아볼게.”

   어머니는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금세 밝아진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뭐.”

   어머니의 엄청난 반발과 질기고도 힘겨운 신경전을 예상했는데, 어머니는 의외로 쿨하게 상황을 인정했다.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던 우리 모녀가 이런 뜻밖의 평화를 얻기까지는 지난한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늘 어머니에게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던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그 수많은 갈등과 반복을 겪는 동안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변했다는 것을.

   나는 끝내 어머니가 원하는 딸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도 그토록 꿈꾸던 ‘교수 딸’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딸을 변함없이 자랑스러워한다. 예전의 엄마라면 노발대발했을 일이지만.

   우리 모녀의 이 불안한 평화가 참으로 소중하다. 내일이면 도 “그래도 여울아, 너무 아깝지 않냐?” 하고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괜찮다. 나는 더 이상 무조건 어머니의 말에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반항기 충만한 20대가 아니기에. 나는 어머니와 협상할 줄 아는 딸, 때로는 어머니의 아픔을 보듬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딸, 때로는 친구처럼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거릴 수 있는 능청스러운 딸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상황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니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바뀌어야 진정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

 

글 출처 :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정여울,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