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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똑같이 사흘을 굶었다. 나흘째 A와 B 앞에 열 개씩 든 사과 상자를 놓았다.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다. A는 너무나 허기져 사과를 보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 그렇게 먹고 나니 속도가 느려졌고 열 개를 다 먹고 나니 사과는 꼴도 보기 싫어졌다. 구역질이 나려고도 했다

B는 반대로 서서히 사과를 하나 들었다. 바라보았다. 사과의 빛깔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처음 보았다. 손으로 닦아 붉은 쪽을 한입 베어 물었다. 식도로 사과의 향이 배어들었다. 허기진 뱃속까지 그 향은 느리게 전달되며 달콤했다.

 

두 번째도 그렇게 느리게 생각하며 느끼며 한입 베어 물었다. 온 몸이 사과 향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 한 개를 그렇게 겨우 두 개를 먹고 나니 왠지 사과를 먹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사과는 일생 자신에게 그리운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사과라는 존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먹는 방법이 달랐다. 하나는 지겨운 결과를, 하나는 그리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 이야기는 대학 시절 서정주 선생님이 문학특강 때 하신 말이다. 그리움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며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쓰지 못한다고 강조하신 분도 박목월 선생님이시다. 두 분 모두 올해가 탄생 백주년이다.

대학 시절 그분들의 말씀을 뒤로 흘렸다. 그리움은 넘치는 나이였고 느린 박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그리워 심장에 피 흘리는 시절, 지겹더라도 내 가슴에 넣어야 성이 차던 화끈한 시절, 진정한 그리움은 생명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특히 문학에서야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내게 지금 그리운 게 무엇인가. 세 번째 커피를 마시며 생각하는 오후다. 기다리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러니 마음이 잦아지면서 참 고요를 느낀다. 모든 생각과 사물이 지겨워진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을 오늘 생각해본다. 지금 바로 앞에 없다는 것, 그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신달자(시인)

 

글 출처 :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2015년 4월 10일 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