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농사로 배추와 무, 시금치와 아욱을 심었느데, 너무 늦게 심은 게 문제였다. 배추는 속이 차지 않고 무는 밑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겨울이 왔다. 김장을 하기에 배추, 무가 모두 너무 어렸다. 비닐로 덮어 놓았으나 그사이 큰 눈이 내렸고, 어린 배추와 무는 눈 밑에 수감됐다.

 

아직 서울 살림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는 가끔 '조정리 글방'으로 내려왔다. 열흘 만에 내려온 아내가 부엌칼을 잡아 들더니 "배추를 좀 캐 봅시다!" 백전노장의 얼굴로 앞장서라 했다. 밤이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아내와 눈 속의 배추를 살피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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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히 쌓인 눈 밑에서 배추는 뜻밖에 싱싱했다. 나는 눈을 치우고 아내는 배추와 무를 몇 포기 캤다. 밤중의 눈밭에서 벌이는 '달밤의 체조' 였다.

 

배추는 정말 맛이 있었다. 그보다 더 맛있는 배추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싱싱하고 향긋했다. 아내와 나는 시시덕거리면서 배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며 밤늦게까지 소주를 마셨다. 밖에는 다시 눈이 내리고, 아내는 취해서 내가 40여 년 전에 잘못한 일까지 시시콜콜 시비를 걸었다. 자연은 사람을 너그럽게 하는 바, 조금도 노엽진 않았다. 아침엔 배추쌈과 배춧국으로 속풀이를 했다. 재료가 싱싱한지라 된장 풀고 간만 맞춰도 향긋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아무것으로도 윤색되지 않는 '자연의 맛'이었다.

 

"내가 여길 오면 저 배추 땜에 오는 줄 알아!" 아내가 말했고, "아무렴!" 내가 대답했다.

 

배추는 아직도 세 두렁이나 남아 있었다. 후배는 봄에 '봄동'으로 먹어도 맛있다고 했지만 이제 '자연의 맛'을 알았으니 봄까지 배추가 남아 있을 것 같진 않다.

 

아내가 서울로 간 뒤에 나는 소주 생각만 나면 한밤중에도 눈밭으로 나가 배추를 두어 포기 캐 왔다. 된장만 있으면 되는 안주였다. 배추를 캐서 냉장고로 옮길 어리석은 생각따위를 하진 않는다.

 

워즈위스는 노랬다.

 

"우리들이 지상에서 사는 한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은 자연의 은혜다."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감의 대개는 가난한 밥상, 쓸쓸한 배회에서 얻는다. 나는 최소한의 식사를 하고 혼자 배회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애쓴다. 자유로운 삶의 본원적인 심지가 여기 박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배추 한 포기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생생한 천연의 행복감이자 곧 본원적인 자유다.

 

글 : 박범신

출처 : 좋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