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눈군가에게서 희망을 빼앗지 마라.
가진 것의 전부일 수도 있으니


    2008년 가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단이어서인지 가장 좋은 자리의 티켓 가격이 거의 50만 원에 가까워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입맛만 다셨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당시 한국에 와서 아주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다름 아니라 소외 계층 청소년 400명을 리허설 공연에 초대한 것이다. 그런 공연은 꿈도 꿀 수 없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그 초대는 무한한 행복과 충격이었을 터이다. 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음악관과 인생관이 빚어낸 행복이다.

   래틀은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나누는 것은 어떤 이익을 우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부유한 계층이 아닌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최대한 많은 음악적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비싼 티켓 가격 때문에 연주회에 오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리허설을 무료로 개방하고 싶습니다.”

   오전 리허설 때마다 하루 400명씩의 청소년들이 초대됐다. 멀리 부산 마리아 수녀회의 아동복지시설인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 아이들도 그렇게 연주회 리허설에 참석할 수 있었다. 두 시간 반 리허설 동안 일반 연주회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악적 밀도를 느낄 수 있었을 아이들은 예술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그리고 삶의 따뜻함을 함께 배웠을 것이다.

   리허설 중간에는 아이들이 무대 앞으로 가 래틀을 둘러싸고 사인을 받기도 했는데. 래틀은 무대 바닥에 그대로 앉아 싱글벙글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이면 래틀은 아주 독특한 이력의 지휘자이다. 타악기 신동으로 이름 날리던 그가 19세에 지휘자로 변신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저 특이한 지휘자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 최고라고 인정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강한 카리스말 압도하던 예전의 상임 지휘자 카라얀과는 달리 그는 유머와 싹싹함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주로 독일 음악 스페셜리스트로서 명성을 날리던 이 악단이 다양한 국가의 현대음악을 계속해서 래퍼토리로 쌓아가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고 덕분일 것이다.

   베를린 필과 사이먼 래틀이 이틀 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며 아름다운 공연을 한 것도 멋지지만, 소외 계층의 청소년들을 초대해 연주를 들려준 건 분명 넘치도록 행복한 사건이다. 그건 진정 음악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따뜻해질 수 있음을 초대받은 어린 청소년들은 한껏 누리고 왔을 것이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재단이다. 이 재단은 마약과 범죄에 찌든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교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되었다.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와 그의 동료들이 가난과 폭력에 찌든, 길거리 아이 열한 명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예상치 못한 놀라운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신화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 음악 교실이 200여 개로 늘어났고 단원 수만도 무려 30만 명을 넘는다. 문제아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성장하고, 국가 전체가 활기를 되찾는 놀라운 변화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곳은 사이먼 래틀과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차세대 마에스트로로 꼽은 구스타보 두다멜을 길러낸 곳이기도 하다. 구스타보 두다멜은 겨우 20대의 나이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가 된 인물이다. 때로는 악기가 모자라 종이 모형으로 합주를 연습해야 했던 그것에서 그는 싸움과 패배가 아니라 연대와 조화를 배웠다.

   19세기 남미를 해방시킨 전설적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도 엘 시스테마의 악단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이다. 그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카라카스 오케스트라도 바로 엘 시스테마를 통해 성장한 유망한 교향악단이다.

   음악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새로운 꿈과 미래로 이끌 수 있고, 나아가 세상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위대한 무기가 될 수 잇다는 걸 보여준 엘 시스테마는 정말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대단히 경이로운 선물이다.

   ‘클레멘트 코스의 기적’을 만들어낸 얼 쇼리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희망의 인문학을 시도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감옥에 갇혀 살던 재소자 비니스 워커였다. 겨우 열아홉 나이에 마약과 에이즈로 심신이 망가진 채 배드포드힐스 교도소에 수감된 그녀는, 이를 극복하고 수감 기간 중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과정까지 밟았다.

   상담자로 만난 얼 쇼리스에게 그녀는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얼 선생님, 그 애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애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사이먼 래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얼 쇼리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다. 예술이나 교양이 그들에게 자존감과 희망,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1970년대 중반 국립극장에서는 연간 티켓을 팔면서 특별히 청소년을 위한(물론 자리는 맨 위 가난한 자리였지만) 염가의 티켓을 팔았고, 여러 차례 리허설 공연에 초대하는 행사를 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애틋하다.

   가난한 이들도 음악을 누릴 수 있도록 베풀 수 있는 사랑.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의 의미이고 가치이며, 세상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렇게 따뜻하게 예술을 누리고 나눌 수 있는 날들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

글출처 : 위로가 필요한 시간(김경집, 조화로운삶)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