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말 이름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어느 미용실 이름이 ‘머리에 얹은 봄’이었다는 기사를 보고 참 새롭고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는 말을 다시 기억하면서 나의 마음에도 봄을 얹어야지 생각하면 이 글을 씁니다.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 이해인, <봄 일기-입춘에> 전문
  어느 날 저는 이렇게 노래해 보았습니다. 봄은 우리에게 누군가에게 다가가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라고 재촉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되도록 밝은 마음과 표정을 지니려고 애씁니다. 봄이 왔다고 더 열심히 노래하는 창밖의 새소리도 ‘사소한 일에 스며 있는 기쁨을 놓치지 말라’, ‘어서 희망을 노래하라’고 일러 줍니다. 하루의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찡그리지 않고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희망을 건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 꽃은 땅속의 학교에 다니지요/문을 닫고 수업을 받는 거지요”로 시작되는 타고르의 <꽃의 학교>라는 시를 읽으며 봄의 정원을 산책합니다. 제비꽃, 민들레, 봄까치꽃, 천리향 등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뜰에 서면 봄은 우리에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줍니다. 봄에는 너도나도 약속이나 한 듯이 꽃구경을 하지만 우리 마음을 꽃마음으로 만들고 우리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들 수 있어야만 우리의 봄은 향기롭고, 꽃놀이도 그만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꽃에게로 다가가면 / 부드러움에 찔려 / 삐거나 부은 마음 / 금세 / 환해지고 선해지니 / 봄엔 /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이라고 말하는 함민복 시인의 <봄꽃>이란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혹시 누구하고 살짝 삐친 일이나 미워서 부은 일이 있다면 시인의 표현대로 어디 가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꽃침’을 맞고 환하고 선한 마음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책임을 맡은 분들은 일부러라도 짬을 내어 ‘꽃침’을 많이 맞아야만 주변에 더 환하고 선한 봄을 퍼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다운 3월아, 어서 들어오렴. 빨리 달려오느라 얼마나 숨이 차겠니? 나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자. 난 네게 할 이야기가 많단다”하고 노래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밖에 나가서 꽃 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 시인처럼 혼자만의 방에 봄을 데리고 글어가 고요히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명상에 잠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에는 누가 봄이 좋다고 하면 봄이 아름답긴 하지만 온천지에 꽃이 너무 많이 피어 정신없고 왠지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 같다고, 낙엽과 함께 쓸쓸하더라고 차분한 느낌이 드는 가을이 더 좋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암환자가 되어서일까 지금은 봄이 너무도 황홀한 선물로 다가오고 순간순간이 아름다워서 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 떠나는 계절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도 봄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곧 1주기가 다가오는 저의 벗 화가 김점선도, 멋진 에세이스트 장영희도 모두 봄에 먼 길을 떠났다는 기억이 새롭네요.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가을은 쓸쓸하니 그래도 생명의 기운 가득한 봄에 떠나면 남은 이들이 좀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해보게 됩니다.

   봄과 같은 사람이란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기의 처지를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서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하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저의 어느 산문집에 있는 <봄과 같은 사람>을 누가 한번 인용한 후로 인터넷에도 많이 떠다니는 이 글을 저도 다시 한 번 읽어 보며 보모가 같은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봄과 같이 따뜻한 맘씨, 봄과 같이 부드러운 말씨, 봄과 같이 밝은 표정, 봄과 같이 환한 웃음, 봄과 같이 포근한 기도를 바치며 함께 길을 가는 우리가 되기로 해요. 어떤 이유로든지 그동안 말 안 하고 지내는 이들과의 냉담한 겨울이 있었다면 그 사이에도 화해의 꽃바람을 들여놓아 관계의 봄을 회복하기로 해요.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봄길을 걸어가는 꽃과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꽃술이 떨리는
매화 행기 속에
어서 일어나세요. 봄

들새들이
아직은 조심스레 지저귀는
나의 정원에도

바람 속에
살짝 웃음을 키우는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살아 있는 모든 것들
다시 사랑하라 외치며
즐겁게 달려오세요. 봄……

-이해인, <입춘> 전문

글출처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해인 산문집,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