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큰절에 가면 보통 식당과 다를 바 없는 서양식 큰 식당에서 공양을 하는데, 식단이 불교적이라고 하더라도 장소가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절에서 밥을 먹는다는 느낌이 그리 크게 들진 않는다. 절에서 먹는 밥은 산 숲의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나무 향기 나는 앉은뱅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먹어야만 제격일 것 같기 때문이다.

    1980년대 법정 스님께서 불일암에 계실 적에 친구 수녀 두 명과 같이 잘 아는 보살님의 안내로 그곳 손님실에서 하루 묵으며 아침 공양을 한 일이 있다. 우리가 준비한 소찬으로 밥을 먹는데, 둥글고 고운 갈색 발우에 밥을 담아 얌전하고 품위 있게 먹어야 할 것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고추장까지 달라고 하여 산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서 씩씩하게 먹었더니 스님이 이런 내 모습에 놀라셨는지 내게 ‘대식가’라는 별칭을 붙여 주셨다. 사실 밥의 분량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고 남보다 더 먹은 게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다.

    ‘반찬은 간소하게! 세 가지를 넘기지 않게!’ 라고 조그만 부엌 한 모서리에 적혀 있는 글귀를 보며 ‘우리 수녀원하고 같네! 반찬이 많아야 서너 가지니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 새롭다.

    또 하나는 영주 부석사에 갔을 때 먹었던 절밥이다. 몇 년 전 봄, 늘 듣기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부석사에 안동 사는 몇 명의 성당 자매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산수유 꽃이 피어난 절 마당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절의 아름다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우리는 먼저 커다란 온돌방으로 안내되었다. 마침 그날이 주지 스님의 생신이라 절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점심 공양의 혜택이 주어지는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고급스런 찰밥과 미역국, 여러 종류의 나물과 김치와 튀김이 차려진 식탁에 안내 되었을 때 나는 그만 공양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내 몫의 미역국을 몽땅 검은 수도복에 쏟아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부끄럽게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보살님들의 안내로 부랴부랴 부엌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국물을 닦아 냈지만 그날따라 미역국에 특별 양념을 했는지 좀체 지워지질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수선하긴 했어도 다시 들어가 먹는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일행은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에는 나의 글을 좋아하던 애독자 아줌마도 있었다. 그 일로 “겉으로 보기엔 깔끔하고 빈틈없을 것 같아보이던 수녀님이 국을 쏟으며 당황하던 그 순간 저는 수녀님에게 더 인간적인 푸근함과 정겨움을 느꼈답니다.”하는 러브레터까지 받게 되어 그와는 종종 부석사 이야기를 하며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절에서 국을 쏟은 사건조차 축복이 된 것 같다.

    자주는 아니지만 요즘도 어쩌다 절에 가서 공양을 할 기회가 있으면 나는 조금 긴장이 된다. 또 덤벙대다 국물을 쏟지는 않을지. 불자들이 보는 데서 우아하게 밥을 먹어야 할 천주교 수녀가 너무 빠른 속도로 평소의 분량보다 더 많이 먹게 돼 흉이나 잡히진 않을지······, 그래서 요즘은 절에서 공양의 기회가 오더라도 되도록 멀찍이 떨어져 방관하다 조심스럽고 얌전한 모습으로 공양하려고 노력 중인데 뜻대로 잘 될지 모르겠다.

    옆에 스님들이 계시면 더욱 주눅이 드니 많이 먹고 싶어도 소식(小食)을 하는 척 양을 줄여 보기도 한다. 얼마 전 병원에 가니 나의 위(胃)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 더 이상 ‘대식가’ 노릇도 못 하게 생겨 유감이다. 아무리 절제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수행자라도 밥만은 아주 복스럽고 맛있게 먹어야 보기가 좋고 옆에서도 부담을 덜 느낄 것이다. 밥상에서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남이 눈치 채지 않게 아주 조금씩 절식하는 노력이 더 아름답다고 본다. 나는 공양 시간이 되면 나그네에게도 너그럽게 열려 있는 절 문화를 사랑한다. 그리고 절에서 한번 밥을 먹고 싶다는 외국 손님들을 데리고 가도 마다하는 일 없이 환대해 주시는 스님들을 많이 알고 있어 행복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들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읽을 적마다 마음이 겸손하고 따스해지는 <공양계>를 오늘도 다시 읽어 본다.

    내가 아직도 살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림에 감사하면서 밥을 먹는 그만큼 나의 사랑도 깊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내가 절밥을 언제 또 먹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처럼 바람 많이 불고 스산한 날은 정갈하고 푸근해서 좋았던 따뜻한 절밥, 자비의 밥상이 그리워진다.
(불교문화) 2006년 12월호

글출처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이해인 산문집 :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