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기를 여러 번 하고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어

식물인간처럼 드러누운 채로 말한 적이 있어요.

"포기하는 거야. 다시 시작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어. 삶은 공평하지 않아."라고.

 

그러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을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살겠다는 욕망은 더 커져가고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은 단단해져 갔어요.

벼랑 끝이 결코 절망이 아니라 그 너머에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후회와 반성 깊은 고민이 삶의 끈을 붙잡게 되는 동기가 되고

더 많이 노력하도록 채찍질하고 독려한다는 것이에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내가 바라는 곳을 가게 되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에요.

 

절망의 숲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깨달은 것이 많지만

우여곡절을 다 겪고 나서야 내가 껴안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 나보다 못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다만, 내가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는

비교의 상대를 줄여가야 하고 헛된 욕심을 빨리 버려야 해요.

비우고 털어내야 해요. 그것이 마음에 상처를 덜 받게 되죠.

 

욕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던 때에는 바로 앞의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더니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보니 멀리 있는 이정표까지 보이네요.

이 모두가 '내려놓음'의 효과 때문이겠죠.

 

티베트 속담에

'충분히 갖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부자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행복은 '넘침'이 아니라 '적당함'이었어요.

 

온몸으로 노를 젓는 어부처럼 목숨을 걸만큼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돌아보니 산다는 것은 한여름날의 햇살보다 짧았어요.

앞으로 나에게 예정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가장 아름다울 때 추락하는 동백꽃처럼 살고 싶어요.

 

앞으로 좋은 향기를 내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날이 얼마나 있을까요?

있다면 언제쯤일까요? 좋은 향은 백 리, 천 리도 간다는데….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요?

언제쯤이면 출구 없는 이 몹쓸 욕망을 붙들고

휘둘리는 나를 편안히 쉬게 할까요?

 

내일이면 또 헛헛해진 마음을 채워줄 새로운 태양은 떠오를 텐데 마음이 무거워져요.

얼마나 지독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내 것'과 '남의 것' 정확하게 구분하는 반듯한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도

해질녘이면 자신을 바다에 던지듯,

내 품에 잠시 안겼던 눈부신 욕망도 슬픈 생채기만 남기고 떠나가네요.

한 번쯤 빠져들고 싶었고 그래서 내 눈과 입 그리고

마음가지 붉게 불들이던 헛된욕망도 흘러가네요.

 

또 이렇게 버리지 못한 욕망을 꺾어 욕심을 내려놓으며

무수히 충돌했던 일 년 동안의 삶을 추억 속으로 떠나보내고 있어요.

후회가 많을수록 반성의 시간이 길수록 삶은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시간 앞에만 서면 이렇게 순한 양이 되어 겸손해지니까요.

 

떠나면 잊히는 것이 순리인데 난 언제쯤이면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을까요?

 

 

짧은 빗줄기가 훑고 지나간 하늘에

욕심 없는 새털구름이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회색빛 빌딩 숲 속에는 낯선 것들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상념이 쑤욱 고개를 내밉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글 출처 : 새벽 2시에 생각나는 사람(김정한, 미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