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도 끝날 날이 있을까. 작가 이병주는 중편소설 <예낭풍물지>의 맨 마지막 문장을 “태양도 끝날 날이 있다”고 끝맺는다. 감옥에서 나온 폐병환자인 주인공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주인공은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날, 나는 지구도 그 맥박이 멎을 것을 확신하다”며 비통해 한다. 어머니의 부재(不在)는 곧 태양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의 주인공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그렇다.

  어머니가 없으면 태양이 시들고, 지구가 시시해진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하늘이자 땅이다. 엄마 없는 유년(幼年)은 빈방처럼 썰렁하고, 찬밥처럼 시들하다. 엄마를 기다리는 기형도 시인의 유년 풍경이 그렇다. 서른의 나이에 삶을 마감한 그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詩)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빈방에서 훌쩍거리며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 시리다. 엄마가 없는 유년의 ‘뜨락’은 이렇게 쓸쓸하다.

  엄마를 부를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엄마”하고 불렀을 때 “오냐” 소리가 돌아오는 것은 축복이다. 엄마를 부르면 모든 게 채워진다. 김종철 시인은 그래서 엄마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기도’라고 말한다. 그는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머니 영정 앞에서 시인은 “그래 그래, 엄마 하면 밥 주고 /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라며 엄마라는 부름은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라고 노래한다.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에게 꽃을 바치는 날이다. 어버이는 자식의 영광이요, 자손은 늙은이의 면류관이라는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꽃보다 귀한 훈장이다. 꽃은 시들어도 훈장을 시들지 않는다. 어버이 마음에 훈장을 달아드리자. 어린 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늙은 엄마는 자식을 찾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기도’를 드릴 날은 짧다.

글출처 : 김태관 경향신문논설위원(2010년 5월 6일字 경향신문)의 여적(餘滴) 중에서…….